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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1. 20:50

파도는 입으로 말하는 법이 없다. 파도는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입이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고,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다. 파도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한들, 바다에 담아 놓은 그 마음을 어떻게 말로 할까. 파도가 입이 있다고 한들, 바다 고여 있는 그 눈물을 어떻게 토로할까. 바람이 사정없이 달려들어 매질하고, 달빛이 소리 없이 유혹을 해도, 파도는 말하지 않으면서 소리를 낸다. 

 

바닷물 사이사이 넣어둔 짠 내 나는 인생의 고달픔을, 파도는 소리치며 하늘로 뱉어낸다. 입이 아니라 몸으로, 말이 아니라 음으로, 그렇게 토해낸다. 아무리 많은 술을 마셔도 파도만큼 취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눈물을 흘려도 파도처럼 슬플 수는 없다. 바다가 있어서 파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파도가 있어서 바다가 존재하는 것이다. 파도 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니고, 그래서 파도 없는 바다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너는 파도였다. 너 때문에 바람 속을 달려, 해변에 물보라를 만들었다. 너 때문에 달빛에 밀려, 바위를 타며 하늘을 동경했다. 너는 나에게 바다였다. 네가 있어 하늘보다 푸른 바다를 사랑했고, 네가 있어 흰 구름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었다. 나 때문에 너는 존재했고, 너 때문에 나는 생존했다. 끊임없이 돌아서며 잊자고 다짐해도, 쉬지 않고 달려들며 매달렸다. 너를 떠나지 말라고 매달렸고, 너를 버리지 말라고 매달렸고, 너를 사랑하라고 매달렸다. 

 

너의 그 매달림으로 만들어진 나의 이 처절함의 열매를, 너는 받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않는다. 매달려 놓고 너는 등을 돌리고, 매달려 놓고 너는 목을 세운다. 파도가 어쩌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처럼, 파도가 멈추지 못하고 울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등 돌린 네 뒤에서 나는 서늘하게 날이 선 너의 목덜미를 본다. 매달리는 자의 그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없었던 파도의 원죄다.


[ Canon EOS-1D Mark II | EF 70-200mm f/2.8L IS USM | f/8 | 1/8,000 | ISO 200]


 

파도

 

내 마음엔 늘 파도가 인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눈발이 날리면 눈발이 날리는 대로,

어제처럼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는 대로,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고부터 파도가 인다.

 

내 마음엔 늘 파도가 인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잦아들지 않고,

눈발이 날리지 않아도 멈출 수 없고,

오늘처럼 비가 내리지 않아도 잠들지 않는,

사춘기를 지났어도 사라지지 않는 파도가 인다.

 

내 마음엔 늘 파도가 인다.

마음의 파도를 멈춰보려 바다에 간다.

가슴의 파도를 잊어보려 산으로 가기도 한다.

세월은 흘러만 가는데 파도는 날 놓아주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파도는 내 속에서 떠날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