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E•INSPIRE/ESSAY

사는 것이 는개 속에 있을 것 같을 때가 있다.,.그래도 멈추지 말고 꾸준하게 저어가야 한다

zoomflex 2025. 11. 12.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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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글을 써봐.” 나는 평생을 돈 받는 글을 써서, 그것으로 밥벌이를 했는데, 그는 내게 돈 되는 글을 쓰란다. 맞는 말이다. 솔직하게 나는 그가 말하는 돈 되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그가 말하는 돈은 ‘많은 돈’을 말하고, 나는 글을 써서 ‘적은 돈’으로 궁핍한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내가 쓴 것은 어쩌면 글이라 할 수 없다. 그냥 ‘정보·사실·경험’을 나의 건강과 맞바꾸며 파발을 띄우듯 떠나보냈을 뿐이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규칙 또는 불규칙하게, 그 대가를 받는다면, 돈 되는 글을 쓰는 것이다. 기획안, 보고서, 제안서, 견적서, 계약서 등등 그리고 또 기타 등등은 모두 글이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을 쓰는 자나 이 글을 읽는 자는 모두가 글쟁이들이다. 다만,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과 그릇과 재료가 다를 뿐이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를 글쟁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 속에는 서사가 없거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dW. 우리의 서사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일지 모른다. 스토리를 만들어낼 필요 또는 시간조차 없는 우리에게, 우리의 스토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 그 자체다. 대부분은 그것을 모르거나 잊고 살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언젠가의 희미한 추억으로 남을 뿐이지만, 기록은 결국에 누군가의 역사가 된다. 추억은 사라져도 역사는 남는 이유다.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dR. 기록은 모든 서사의 시작이다(라고 쓰지만 사실은 전부일지도 모른다). 기억 속에 갇혀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기록’은 ‘쓴다’의 거룩형이다. 쓰는 것은 목적이 없을 수도 있지만 기록은 목적을 가질 수 있다. ‘목적을 가진 쓴다’는 행위는 숭고한 작업이다. 그래서 왜 쓰는지 알고 쓰는 글과 왜 쓰는지 모르고 쓰는 글은, 만들어 가는 길도 도착하게 되는 종착지도 다르다. 기록은 시간의 지도인 까닭이다.

 

dI. 나 아니면 모두가 너인 세상, ‘나’나 ‘너’나 ‘는개’ 속에 있을 때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안개비도 아니고, 이슬비도 아닌 것이, 발길을 더디게 한다. 우산을 쓰기도 애매하고, 그냥 걷자니 불편하다. 그럴 땐 걷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꾸준하게’. 어떻게 걷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걸어야 한다. 는개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벗어나는 것이다.

 

dT.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나아가는 것뿐이다. 혼자서 읽고, 혼자서 쓰고, 혼자서 걷고, 혼자서 뛰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귀찮아도, 힘들어도, 아파도, 그것 만큼은 하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하려면 오롯이 모든 것으로부터 혼자여야 한다. 감정이 뿌리내릴 자리를 주면 안 된다, 핑계가 매달릴 여지를 주어서도 안된다, 생각이 싹을 틔울 틈을 주지도 말아야 한다. 꾸준함은 그것을 훈련하는 것이다.

 

dE.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논어(論語), 옹야(雍也) 편)’ 했다. ‘즐긴다’는 동사(Enjoy)가 아니라 명사(Joy)이어야 한다. 외부 자극으로부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솟아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꾸준하게 나아가는 자신을 추앙하는 것, 그것이 엔조이를 외치는 자들 속에서 버티는 길이다. 즐긴다는 것은 격정이 아니라 평안(Equanimity)이어야 한다.

 

꾸준함은 자신만의 규칙(Routine)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쉬운 길은 쓰는(WRITE)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지 말고,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면 된다. (남을) 즐겁게 하려 하지 말고, (내가) 즐겁게 쓰면 된다. 무엇을 썼는가 보다, 왜 썼는가에 방점이 지킬 때, ‘쓰는 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다. 어차피 ‘돈 되는 글은 못쓴다’, 그러니까 즐겁게 글을 쓰면 된다.

 

‘즐겁게 글을 쓰는 것은, 인생을 저어 가는 것이다.’ 저어 간다는 것은, 나아가는 것이고, 돌아가는 것이고, 올라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인생을 저어 가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다. 그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수필에서 ‘자전거를 타고 저어 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명심하라, 그가 했던 것처럼 쓰지 않는다면 기록으로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자전거 여행(김훈, 2000.8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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