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드인?!] 창의력은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AI 에이전트 시대의 생존 전략 크기가 아니라 방향
·크기만 있고 방향이 없는 창의력은 능력이 아니라 괴력
·길잡이는 ’왜‘, ‘언제‘, ’어디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읽고, 쓰고, 생각하기 위해, 먹고, 자고, 기도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창의력‘의 정의가 달라져야 한다. 인간들끼리 경쟁하던 시대에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식의 위로가 암묵적으로 인정됐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고 했다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모방이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데 도움이 되고 때로는 필수적인 과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생산 활동에서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이 ‘모방’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방에는 원칙과 방법이 필요하고, 절제와 선택의 지침을 지켜야 한다. 섣부른 모방은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자신도 모르게 넘어갈 수 있다. 휘발성이 강한 ’말’과 다르게, ‘글’은 한번 기록으로 남으면, 저절로 사라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말은 손대지 않아도 사라지지만(녹음이 공식, 비공식으로 난무하는 까닭에 꼭 그렇지도 않지만), 글은 손대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거대언어모델(LLM)을 엔진으로 사용하는 생성형 AI는 추론이라는 용어로 대단한 능력의 원천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모방의 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들의 엄청난 능력은 ’없던 것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것을 들춰낸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물론 그들의 예측 과정에 정말 창조의 영역까지 발을 들여놨을지도 이 역시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AI 시대가 대화형 챗봇에서 에이전틱(Agentic) AI나 AI 에이전트(Agent) 시대로 판이 바뀌면서, 인간의 고차원적인 사고, 사유, 사색의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그것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하자면 ’창작‘ 또는 ’창조(대부분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지만)’ 정도가 적당하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은 ‘창의력’이며, 물리학에서 설명하고 규명하고자 하는 수많은 힘(force)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힘은 단순히 크기만으로는 정의되지 않고, 크기(magnitude)와 함께 방향(direction), 그리고 작용점(point of application)을 함께 가져야 물리적인 의미가 성립한다. 예를 들어 같은 10 N(뉴톤)의 힘이라도 오른쪽으로 미는 경우와 왼쪽으로 미는 경우, 위로 드는 경우는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힘이 스칼라(Scalar)가 아닌 벡터(Vector)이기 때문이며, 창의‘력‘ 역시 ‘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방향이 필요한 벡터라고 볼 수 있다.
“’왜‘, ‘언제‘, ’어디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같은 깃발과 표지로 방향을 정하지 않은 말, 글, 행위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힘의 크기가 우연하게 제대로 방향을 잡으면 긍정적인 결실을 맺는다. 하지만 힘이 작용한 상태에서 방향을 찾다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향하면,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던 재난이나 재앙이 될 수 있다. 그 정도가 실수로 규정할 수 있는 범주라면 다행이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면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인 우리‘는 항상 힘보다 방향에 대한 생각, 고뇌, 고찰을 앞서 가게 해야 한다. 자신이 하려는 이것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 ‘언제 있어야 하는 것인가?’, ‘누구에게 도움이나 영향을 줄 것인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버려야 하나?’,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하지?‘처럼 질문으로 시작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며 방향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속 가능하며 선한 영향력‘이란 속성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는가?’를 항상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규정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지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고귀하다‘는 의미다. 바꾸어 말하면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와 의미가 위태롭다’는 뜻이다. 인류가 지금 당면한 수많은 문제들은 이러한 생각의 결핍(부족)이나 부재(없음), 상실(잃음)이나 방황(헤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가 시작된 곳으로 우선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돌아오는 것 역시 창의력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곧, ‘힘‘에 매몰되지 않고, 유연한 ‘방향’ 조절 능력을 갖는 것이 창의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과제나 문제 앞에서 매번 같은 위치와 방향에서 접근하지 말고, 다양한 곳에서 바라보고 따져보며 생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손과 발, 뇌와 눈이 부지런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귀는 열고 입은 닫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때로는 이 모든 것들을 ’아무것도 안 함’의 상태로 스위치를 꺼둬야 할 때도 있다. 이것 역시 ’방향’의 영역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AI 시대에는 ‘창의력‘의 정의가 달라져야 한다’. 그것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결과 앞에서 감탄과 갈채를 보내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모방이 아닌 진짜 창의를 향한 그 방향으로, 걸어가고 나아가고 저어 가고 달려가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를 서사로 엮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능하면 종이에 인쇄 또는 쓰인 글을) 읽고, (가능하면 종이 위에 그냥 아무 펜 아닌 만년필로) 쓰고, (가능하면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와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기 위해, 먹고, 자고,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