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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와 로봇 플랫폼의 결합...좁은 집 넓게 쓰는 가구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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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집 한 채 장만하기 위해 사는 삶. 이른바 흙수저로 태어난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집 하나 갖기 위해 살고, 집 하나 사기 위해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사는 삶’이다. 그렇게 평생을 ‘집’이라는 굴레에 묶여 살다, 운이 좋아 내 집을 장만하고 돌아보면, 그 집에서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힘겹게 마련한 집에서 몇 년 살지 못할 수도 있고, 빈손으로 와서 집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빈손으로 갈 수도 있다.

 

인구 밀도가 높고 땅값이 비쌀수록 ‘집’의 진정한 가치는 변질된다. 휴식과 안식의 공간이 아니라, 고통과 투기의 대상이 된다. 몇 년 전 더가디언이 보도한 홍콩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놀라움을 넘어 엽기적이다. 이른바 닭장집(Cage House)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관속 침실(coffin cubicles)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서의 삶은 마지못해 버텨야 하는 가난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고달픈 단편이 됐다.

 

집을 소유할 수는 없어도, 집에서 살기는 해야 한다. 작은 집이라도 살만한 능력이 된다면, 비좁지만 내 집을 갖는 것이 최선이다. 가질 수 없다면 빌려야 한다. 어쨌거나 집은 필요하고, 만족할 만큼의 공간을 소유 또는 임대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삶의 질을 높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마음을 깨끗이 비우거나, 방법을 찾는 일이다.

 

손바닥만큼 작은 땅에 지어진 협소주택의 설계나, 좁은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인테리어. 물리적으로 제한된 공간, 더 이상 나눌 수도 없는 영역, 그것을 스마트하게 변신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별로 많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내가 찾을 수 없는 길을 대신 찾아주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리(ori)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2015년에 설립됐고,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회사가 있다. 오리는, 금값만큼 비싼 임대료에 시달리는 도시 생활자를 위한 ‘스마트 가구’를 개발, 설계, 제작하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다. 한번 자리 잡으면 움직이기 쉽지도 않고, 때로는 자리만 차지는 하는 가구. 필요하지만 애물 같은 그 ‘가구’의 변신을 통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라이프 스페이스를 만들어 보자는 뜻을 갖고 태어났다.

 

오리가 설계하고 만드는 가구는 실용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구지만 가구가 아니고, 가구지만 움직일 수 있으며, 가구지만 공간을 재구성하는 역할까지 한다. 책상, 테이블, 침대, 책꽂이, 옷장 등 살아가는 공간을 꾸미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집약시킨 제품들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설계한다. 이를 위해 로보틱스와 로봇 플랫폼을 공간 및 가구 디자인에 접목했다.

 

‘로봇’이라는 단어 때문에 거창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복잡한 기술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듈 형태로 제작된 맞춤형 가구를 ‘힘’을 쓰지 않고, ‘손’을 써서 움직일 수 있는 정도다. 이를테면 버튼 하나로 좌우 또는 앞뒤로 이동시키거나, 침대를 간편하게 접거나 밀어 넣는 정도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아이디어지만 그 별것 아닌 시도가,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삶의 만족감을 선사한다.

 

두 개의 모듈로 구성된 다용도 수납장인 오리의 포켓 클로짓. 옆면에 부착된 스위치를 이용해, 두 개의 수납장을 붙이거나 떼어서 사용한다.(사진:www.oriliving.com)

 

오리가 현재 판매하고 있거나 기획 중인 제품 라인업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포켓 클로짓(Pocket Closet)으로,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보관할 수 있는 수납장을 앞뒤로 이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모델이다. 책꽂이, 옷장, 서랍장, 컴퓨터 책상 등 여러 가지 가구의 기능을 제공하면서, 필요할 때 옆면에 부착된 스위치를 이용해 앞뒤로 이동시켜서 사용한다. 따라서 양면을 수납공간으로 사용하거나, 공간을 분할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스튜디오 스위트(Studio Suite)는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모델이다. 기본적인 수납장에 책상과 침대를 결합해, 더 좁은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TV 수납장부터 다양한 생활소품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오밀조밀하게 들어가 있는 스위트 모델에는 아래쪽에 침대를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스위트 모델은 수납장과 침대가 일체형으로 디지안되어 있다. 필요에 따라 전체 수납장을 앞뒤로 움직여 좁은 공간을 두 개의 공간으로 분할해서 사용할 수 있고, 아래쪽에 있는 침대를 꺼내거나 넣을 수 있다.(사진:www.oriliving.com)

 

세 번째는 클라우드 베드(Cloud Bed)라는 제품으로, 아직 구입할 수 없는 기획 단계의 모델이다. 클라우드 베드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침대를 천장위로 올려 수납하는 제품이다. 잠잘 때는 버튼을 눌러 천장 속에 감춰져 있던 침대를 밑으로 내리고,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올리면 침대가 있던 공간은 소파가 놓여 있는 거실로 변신한다.

 

세 가지 모두 아이디어도 좋고, 실제로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한 가구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가격이 너무 비싸도 너무 비싸다. 포켓 클로짓은 제일 작은 크기가 5,990달러 가장 큰 모델이 7,990달러의 가격표를 달고 있다. 스튜디오 스위트의 경우는 1만 6,990달러와 1만 8,990달러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현재 환율 달러당 1,180원을 적용해 원화로 계산하면, 제일 싼 모델이 약 700만원 제일 비싼 제품은 약 2,240만원이라는 비싼 몸값을 가지고 있다. 감정적으로는 눈길도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치를 따져보게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오리가 처음부터 겨냥한 시장은 뉴욕 맨해튼처럼 임대료가 살인적인 수준인 곳에서 살아야 하는, 도시 생활자를 겨냥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오리와 이케아가 협업을 통해 2020년 선보일 예정인 로그난(ROGNAN). 이케아의 플랏사에 오리의 시스템을 접목해, 침대 수납과 이동이 가능한 제품으로 홍콩과 일본에서 먼저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동영상:ikea.today)

 

한 두평 정도의 임대료가 저 수준을 넘어가는 곳에 집 또는 방을 구해야 한다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주머니를 열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시스템 가구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특별한 경쟁상대가 없는 것도, 가격을 비싸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나홀로 가구나 실버 인구의 증가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이러한 트렌드가 지속되면 충분한 시장 잠재력을 가질 수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눈여겨본 이케아가 오리와 협업을 시작했다. 이케아의 스토리지 솔루션인 플랏사(PLATSA)를 베이스로 오리의 로봇 플랫폼을 접목한, 로그난(ROGNAN)이라는 제품을 개발 중이다. 옷장, 소파, 침대 등을 하나로 구성한 로그난은 오리의 기술과 만나, 움직이고 변신하는 가구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이다. 로그난의 출시는 2020년으로 예정되어 있고, 집값 비싼 홍콩과 일본에서 제일 먼저 출시될 예정이다.

 

이케아 가구가 싸다고 하지만 실제로 쓸만한 것들은 생각보다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다. 로그난 역시 그런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이케아 제품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오리보다 폭넓은 고객층을 가지고 있는 이케아가 현실적인 구매력을 고려해, 지갑 얇은 고객들도 한 번쯤 욕심을 내어볼 만한 ‘합리적’인 가격으로 시장에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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