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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 다뉴브강, 아무리 슬퍼도 강물은 바라보기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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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그 곳에 있었다. 개발되기 이전의 한강처럼 황량했고, 잿빛 물살은 이국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물을 거스르는 배는 거의 없었다. 가끔 화물을 실은 배가 물살을 갈랐다. 강변은 적막했지만, 인적은 있었다. 걷는 사람 보다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았다. 동행 없이 혼자 강가에 있는 ‘그’를 그곳에서 만났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가는 시간의 길목이었다.

 

강물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던, 50대 남자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셔터를 눌러야 하나, 그냥 지나쳐야 하나. 망원 렌즈로 본 그의 뒷모습은, 강물보다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듯했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로 했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물을 따라 걸었다. 수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거세게 흐르는데, 멈추지 않는 생각은 기억까지 지워버린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세체니(Széchenyi). 다리 서쪽 부다와 동쪽 페스트를 이어주는, 부다페스트의 다뉴브강에 첫 번째로 놓인 다리. 그 다리를 두 다리로 걷는다. 다리에 올라서니 비로소 다른 나라에 와 있었다는 현실이 자리를 찾는다.

 

거칠고 매서워 보였던 강물이, 다리 위에서 보니 한결 평안하게 다가온다. 세체니가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다리에 새겨진 세월 흔적 때문인지, 마음은 가벼운 흥분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세체니 다리 서쪽은 부더, 동쪽은 페슈트. 양쪽을 갈라놓던 다뉴브강을 세체니가 이어주듯, 부더와 페슈트가 만나 부다페스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다뉴브강은 부다페스트, 헝가리만의 강이 아니다. 독일에서 물길이 방향을 잡고, 2.860km를 흘러 루마니아에 이르면, 비로소 흑해와 만난다. 흑해를 향하는 동안 10개의 국경을 지나고, 수많은 도시를 거친다. 그때 그 다리 위에 있을 때, 그 밑을 지나는 강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기억으로는 도나우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강은 하나인데, 이름은 여럿인 까닭이다. 강은 말이 없는데, 사람이 말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붙인 이름이 다르니, 똑같은 강을 놓고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다뉴브, 도나우, 두나이, 두나브, 두나이 등 많은 이름을 가졌다. 세월만큼 긴 물길을 가졌으니, 부침도 많고 이름도 많다.

 

1995년 3월 그곳에서의 기억 속에는 유람선이 없다. 유람선이 있었더라도 타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유람선을 타고 낭만을 즐길만한 강으로 다가오지 않은 까닭이다. 어느 쪽은 잿빛이고 어느 쪽은 황톳빛인 그 강물 위를, 굳이 배 위에서 더 가까이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보란 듯이 세체니를 걸어서 다뉴브 또는 도나우를 건넜다.

 

다리를 지나오니 작은 광장이 있었다. 광장 끝에는 작은 언덕이 가로막고 있고, 그 언덕을 오르는 케이블 전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전차에 올랐다. 언덕에서 내려 발길이 가는 대로 가고 싶었지만, 눈길이 이끄는 대로 발길을 잡았다. 일방통행 도로를 지나는 것처럼 골목을 따라, 바람처럼 이리저리 흘러갔다. 몇몇 상점을 지나치면서도 멈추지 않던 걸음이, 가방을 파는 작은 가게 앞에서 멈췄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통가죽 가방을 보면 그냥 칠 수 없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갔을 때도, 미술관을 관람하듯이 가방만 보다가 돌아왔다. 밀라노의 가방은 예술품 같았다. 디자인이 그랬고 가격표가 그랬다. 부다페스트 그 골목에서는, 마침내 예술품이 아닌 가방을 만났다. 소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가죽가방을 결국 품 안에 안았다.

 

드디어 여행자 모드로 몸과 마음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가방의 힘이다, 아니 소유의 힘이다. 그길로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거쳐, 이름도 모르고 기억할 수도 없는 거리를 고즈넉한 하늘을 벗 삼아 걸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언덕 위의 작은 공원, 그 아랫자락에 자리 잡은 전망대에 도착했다. 카메라를 꺼냈으나 필름이 마음에 걸렸다. 급하게 떠나오느라 제대로 된 필름을 준비하지 못했었다.

 

찍고 싶지 않았다, 다뉴브강의 모습들을.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단 한장 있는 다뉴브의 사진은 이것뿐이다. 24년 전 네거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몇 년 뒤 스캔을 해서 디지털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아날로그에는 어쨌거나 세월의 흔적이 남는다. 사진 속의 다리는 아마도 자유의 다리(Szabadság Híd)였던 것 같은데, 기억을 믿을 수는 없다.

 

살다 보면 잊혀지는 기억이 있다. 살아가다 보면 잊혀지지 않았지만 잊고 살아가게 되는 기억이 있다. 그렇게 살아나가다 보면 추억이라는 방에 넣어 두고 살아가는 기억이 있다. 부다페스트의 다뉴브는 추억이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쏘냐라는 친절하고 살가운 직원을 만났던 파피용 호텔, 눈으로 말하고 눈물로 웃던 민박집 아주머니, 검은색 닭가슴살 튀김이 들어있던 맥도날드 치킨버거.

 

24년 동안 그것은 담담한 미소를 머금게 하던 추억이었다. 그런데 24년이 지난 후 절절한 안타까움으로 그곳을 되짚어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낯익은 장소 귀에 익은 그곳에서 들려온, 허망하고 황망한 소식을 듣게 될지 몰랐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 속에서,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슬픔이 눈물을 강물로 떨어뜨리고, 슬픔이 눈물을 말려버릴지라도, 아무리 슬퍼도 강이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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