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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 슬럼프에 빠졌을 때, 오랜 병중에 있을 때, 지켜야 할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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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살아있는 사람이라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위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둔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마냥 길어지면, 삶 자체마저 부정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어쩌면 만날 수 있다. 사실 '어쩌면'이라고 쓰지만, 마음은 ‘반드시’라고 말하고 있다. 좋은 약도 너무 오래 많이 먹으면 독이 되는 법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끝을 정해 놓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꾸준하고 규칙적으로 하는 일 한가지는 만들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빠져야 한다. 좋아하는 일이든 잘하는 일이든,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런 일을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이 일과 업으로 삼던 것 중에서, 가장 수월한 것을 찾아서 해보는 것이다. 정말 하찮아 보이던 일이라도, 최대한 신경 써서 꾸준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무한반복 상태로 지속하면, 감(感)을 잃는다. 아무리 한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던 사람도, 감을 잃으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다. 그렇게 감을 잃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돌아오기 힘들다. 설령 돌아오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며, 예전 상태로 회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열역학 법칙의 세계에는 '비가역(非可逆)'이라는 용어가 있다. 물질이 이전 상태에서 현재 상태로 변했을 때, 현재 상태를 벗어나 이전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인생에는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어쩌면 더 많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소소하고 시시하게 보던 것들 속에 무수하게 숨어 있다.


살다 보면 슬럼프에 빠져서 시간으로부터 인생으로부터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몸부림치고 발버둥을 칠수록 더 깊은 침잠(沈潛)으로 마음이 향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따라가니 여기저기서 비정상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그런 상태에서의 비정상은 정상이다. 적어도 몸이 신호를 보낼 때, 그것을 무시하지 않으면, 돌아설 기회는 생긴다.

 

살아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병이 찾아온다. 이름이 있는 병이면 다행이다. 진단명이 있다면 치료 방법이 있는 경우가 많고, 이런 병은 꾸준하게 치료받고 관리하면 벗어날 수 있다. 치료 방법이 없어도 최소한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에게 설명은 할 수 있다. 이름도 모르고 원인도 모르고 고칠 방법도 모르는데, '죽을병'은 아니라고 할 때 그것만큼 암담한 것도 없다.

 

 

그런 시간의 골이 깊어지고, 그런 상처의 크기가 커지면,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원망한다. 대상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원망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가만히 곱씹어 보면,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이유가 없듯,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까 버텨야 한다. 견딜 수 없으면 버티고, 버틸 수 없으면 견뎌야 한다. 말장난 같지만, 그 상황에 빠져보면, 견딤과 버팀이 가져다주는 생각과 생활이, 어떻게 다른지 몸과 맘으로 알게 된다. 어떤 쪽이든 번갈아 가며 하나씩 붙들어서, 자신을 보듬어서 지켜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은 그것을 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고 믿는다. 아직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까지 직접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견디고 버티는 중이다. 불가에서는 쓰는 영겁(永劫)이라는 말이, 시간을 쌓은 적분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시간을 쪼갠 미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영원하지만, 상태는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우선은 소비 지향적인 일보다는 생산적인 일이 좋다. 이를테면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영화평을 써보는 식이다. 투병 중이라면 매일매일 증상과 상태를 기록하는 것도 방법이다. 슬럼프 속에 있다면 하루에 한 개씩 명언을 받아 적으며, 그냥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다.

 

요즘은 그럴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지천이다. 하루에 한 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공유하면서, 세줄씩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기로 약속해도 좋다.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좋은 글을 다른 사람과 하루에 10개씩 공유하기를 실천해도 좋다. 다양한 곳에 다양한 서비스로 존재하는 글쓰기 플랫폼에, 꾸준하게 글을 쓰는 것은 가장 추천하는 일이다.

 

 

 

먹을 것을 소화해 배출하지 못하면 죽는다. 생각도 그렇다. 들어온 것으로부터의 생각과 안으로부터 생겨난 생각을, 소화해서 배출하지 않으면 마음이 병든다. 그렇게 생각을 소화하고 배설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글쓰기다. 단지 그렇게 쓰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편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잊고 살아가지만, 말도 언어이고 글도 언어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차이점 중에 하나다. 머릿속에 간직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말로 표현해야 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랑'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지금은 말해야 알고, 행동해야 느끼는, 그런 세상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감을 잃지 않으려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연히 알고 사는 줄 알았는데,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그걸 경험으로 깨달으려면, 너무 잃는 것이 많고 오래 걸린다. 이제,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거나, 좀 더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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