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지요.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죠. 어디 물건뿐인가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마음이 원하는 욕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나, 눈으로 보는 순간, 마음에 점을 찍습니다. 점이 자라면 선이 되고, 선이 커지면 면이 되고, 면이 확장되면 공간이 되지요.
그렇게 마음 한 쪽에 ‘갖고 싶은’이라는 방이 생기면, 점점 더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무엇을 보는지, 어떤 것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근본입니다. 본다는 것은, 그곳에 있거나, 어떤 매체를 접하고 있을 때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지 말아야 할 곳, 보지 말아야 할 것, 그런 것들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견물생심은 모든 것이 더디거나 느린 세상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요즘처럼 너무나 빠르게 모든 것이 퍼지고, 알려지고, 진행되는 세상에서는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생심견물이라는 표현이 어쩌면 더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으로 찾아 들어오는 온갖 소식을 접하다 보면, 눈은 가만있어도 마음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눈이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눈을 이끄는 것이죠.
사람이 가진 감각기관 중에서, 아마도 ‘눈’이 가장 강력한 기능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힘이 너무 센 까닭에 보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 하고, 볼 수 없으면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물과 상황을 분별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는 눈이라는 존재가,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일이 잦아지면,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눈이 높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고, 모든 기준의 중심이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을 무시하고, 판단하고, 결국에는 정죄까지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실수하거나 죄를 짓는 악한 길의 입구로 들어서는 일입니다. 누구도 이 부분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스스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의 반대말은 겸손이 아닙니다. 교만의 반대말은 선함입니다. 결국 교만과 악함은 어깨동무하고 다니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악한 사람이 아니라도 악인을 가까이하면 반드시 악인이 된다[일련]’고 했습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잠언 28:22]’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선한 마음을 갖고 싶다면, 눈부터 맑게 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면, 마음까지 다다르기 전에 버려야 합니다. 혹시라도 얼굴에 있어야 할 눈을 하늘만큼 높은 곳에 두고 살아간다면, 눈이 있어야 할 자신의 얼굴 그 자리에 돌려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학적인 근거’도 여기에 있네요. 마음에 맑은 물과 밝은 햇살이 가득할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깨끗하고 소중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네요.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_잠언 21:4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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