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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 좋은 글은 쉬운 글이다. 좋은 글은, 읽을 때 막힘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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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쉬운 글이다. 좋은 글은, 읽을 때 막힘이 없어야 한다. 나쁜 글은, 읽을 때 걸리는 것이 많다. 자기를 낮추어 쓴 글은, 읽는 사람을 편하게 한다. 자기를 높이려 쓴 글은, 읽는 사람을 바로 지치게 한다. 정말 잘난 사람은 초등학생의 언어로, 과학에서 시작해 역사를 꿰뚫고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보여주는 글'의 전성시대다. 책을 내고 작가가 되지 않아도, 신문에 단어 하나를 기고할 수 없어도,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곳과 것이 어디에나 있다. 참 기분 좋은, 그리고, 참 멋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저기 숨어 있던 고수들의 정갈하고 맛난 글을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가끔 아쉬울 때가 있다. 고속도로처럼 막힘 없이 읽히던 글에, 과속 방지턱 같은 불청객이 불쑥 나타난다. 한 두 번이면 덜컹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한 두 번으로 그칠 것이라면, 그렇게 과속 방지턱 같은 장애물을, 문장 속에 세워두지 않았을 것이다.

 

외국어를 원어 그래도 표기한 단어, 심지어는 원어로 된 문장을 그대로 넣는 경우가 있다. 글쓴이처럼 모든 사람이 '이 단어를 아주 쉽게 발음하고, 이 문장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굉장한 착각이다. 아마 대부분은 그런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글의 존재 가치와 본질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읽는 사람이 내용을 이해한 후, 정보를 얻거나 재미를 느껴야, 그 글은 생명력을 얻는다. 그래서 글 속에서 불쑥 나타나는 장애물은, 흐름을 끊고 마음에 돌을 던진다.

 

Sundar Pichai가 CEO로 있는 구글이 2020년 12월 8일 영국 data modeling 스타트업인 dataform을 인수했다. 데이터폼의 공통 창립자 중 한 사람인 Guillaume-Henri Huon은 "앞으로 데이터폼은 구글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무료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쓰인 글에서, '순다 피차이(Sundar Pichai)', '데이터 모델링(data modeling)', '데이터폼(dataform)', '기욤-헨리 후온(Guillaume-Henri Huon)'처럼, 우리 말과 원어로 표시하는 것은 좋은 글 속에 박힌 불청객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작은 친절이 글의 격과 멋을 바꾼다.

 

물론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순다 피차이'는 '선다 피차이', '순다르 피차이' 등 다양하게 표기할 수 있다. 특히, 사람 이름이나 생소한 언어로 된 지명이나 회사 이름은 더욱더 어렵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은 구글 번역기가 있지 않은가?

 

인터넷이 막 생겨나던 초창기의 일이다. 기사는 다 썼는데, 독일어로 된 이름 하나 때문에, 이틀을 붙잡고 있었던 적이 있다. 논문에 소개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당연히 연구한 사람 이름을 뺄 수는 없었고, 한글로 표기하자니 어떻게 발음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독일어 전공한 후배 도움을 얻어 어렵게 기사를 내보냈다.

 

온라인에 보는 글에 익숙해진 탓에, 정갈한 한글 단어와 문장 속에, 외국어가 들어가면 대못처럼 튄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을 잡지나 신문에 인쇄된 형태로 마주하면, 눈으로 다가와 머리에 박히는 싸늘함은 훨씬 더 크다.

 

논문이나 기술 문서처럼 아주 전문적인 분야는, 보는 사람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개된 공간에 글을 걸어둘 때는, 관심은 있는데 읽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작은 배려를 해도 나쁘지 않다.

 

다행히 우리는 전 세계에 가장 우수한 한글이라는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입으로 소리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문자로 옮겨 적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그동안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미처 몰랐다면, 이제는 조금만 더 친절해져서 좋은 글을 더 좋게 성장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2019년 상여금으로만 2억 8,100만 달러(약 3,500억 원)를 받은, 구글의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자)인 순다 피차이 또는 선다 피차이는, 여기서 자기 이름이 이렇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당신이 그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 주기 전에는, 누군가에게 그는 이름을 읽을 수 없는 외국인일 뿐이다. 당신이 글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한글로 써주는 순간, 그는 누군가에게 가서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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