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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아빠 어렸을 적에, 그때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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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은 넘었고 20년은 채 되지 않았다. 천상병 시인의 찻집 귀천을 들렀다가, 인사동 골목에서 만났던 찻집 '아빠 어릴적에'. 그 후로 인사동을 지나칠 때 마다, 이사간 옛집을 찾아가듯 한번 씩 들러 눈 인사를 나누던 곳.  처음 봤을 때는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했고, 어느날 부터는 아들의 아빠가된 나를 돌아 보았었다. 


정리하던 사진 속에서 만난 필름, 잊고 살던 친구처럼 반갑다. 아련한 시간 냄새가 머릿속 저 깊은데서 밀려온다. 난 여전히 필름이 좋다. 필름의 그 불편한 기다림이 주는 설렘, 필름마다 조금씩 다른 미묘한 색감이 만들어 내는 흥분. 가마에 불을 지피고 도자기를 기다리는 장인의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셔터를 누를 때 마다 잘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 


찍고,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지워버린다. 셔터 한번 누르면 몇 백장까지도 연속촬영이 되는 디지털 카메라가 점령한 인스턴트 사진의 시대. 그야말로 사진 인플레이션이 감정의 인플레이션까지 오게 만들 것 같은 세상. 이제는 몸값이 너무 귀해 '필름'을 짝사랑할 수 밖에 없지만, 다행인 것은 그것의 맛을 알 수 있는 오래전에 사진을 시작한 일이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으로 살 수 있겠는가, 산과 사진 그리고 글을 쓰는 것도 나의 양식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컷 인간들의 버리지 못한 습성 하나. 몸 속에서 용도 폐기된 물을 빼내기 위해,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급하다고 으슥한 곳을 찾아 일을 치른다. 전문용어로 노상방료, 그냥 사내들 말로 오줌싸기. 사람들 눈 피하기 힘든 도심에서, 전봇대는 그러기에 더 없이 좋은 명당이다. 


골목 어귀 전봇대에 적혀있던 '소변금지'. 주인장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않은 글이지만 길가는 객의 눈에는 그날 따라 정겹더라. 그래서 한줄 남겼었다, 아들에게. 21세기 디지털 도시를 살아가면서는 누리기 쉽지 않은, 옛날 꼬맹이들의 자유와 호사를 알려주고 싶어서. 아빠 어릴 때는 가끔은 오줌도 낭만적으로 쌀 수 있었단다. 아들아.



아빠 어릴 적엔 아무데나 쉬~를 했지.

창피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단다.

소나기 한 줄기가 지나면 툇마루에서.

개구리 잡을 때는 논두렁 언저리에서. 


아빠 어릴 적엔 아무데나 쉬~를 했지.

참아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단다.

파아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편안하게. 

시원한 바람을 등지고 휘파람을 불며.


아빠 어릴 적엔 아무데나 쉬~를 했지.

풀내음에 묻혀 살면 모두가 그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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