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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버린다는 것, 버림받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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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철도가 있었다. 수원에서 인천, 정확하게는 수원과 송도를 오갔다. 폭이 좁은 협궤열차였다. 1937년 3월 1일 기차가 처음 달렸다. 1995년 12월 31일 기차는 달리는 것을 멈췄다. 철로의 폭이 좁으니, 기차의 폭도 좁았다. 양쪽 자리에 앉아 팔을 뻗으면, 앞에 앉은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감성의 편에서 보면 낭만이 있었고, 감정의 편에서 보면 불편했다.

 

그 기차가 지나는 곳에 소래포구가 있다. 기차가 달리는 것을 멈췄어도, 한동안 철로는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군데군데 살아남아서 검붉은 녹을 입으며 나이를 먹어 갔다. 2003년 그렇게 세월을 몸으로 견디고 있는, 협궤열차의 한 자락을 찾아 소래포구를 찾았었다. 철로가 지나던 다리를 기차 대신 사람이 건너다녔다. 협궤가 놓인 다리는 사람이 건너다니기에도 좁고 불편했다.

 

그 다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면 오른쪽이 소래포구다. 이쪽은 남쪽이고 저쪽은 북쪽이다. 그곳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면, 서해로 나가는 물길이다. 그 물길을 따라 조금 가면 배다리 선착장과 오이도가 있고, 좀 더 나가면 시화방조제와 만난다. 그렇게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본 바다의 풍경은 거칠었다. 더럽고, 황량했고, 음산했다. 마치 생활고에 찌든 힘겨운 영혼들의 무덤 같았다.

 

온갖 버려진 것들로, 바다도 되고 강도 되는 물길이, 죽어 가고 있었다.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착잡했다. 버려졌다는 것은, 쓰였다는 것의 미래형이다.  필요했었다는 것은, 버려졌다의 과거형이다. 과거가 시간을 타고 흘러 미래가 됐을 때. 필요가 남겨 놓은 흔적은 버림뿐이었다. 그곳을 바라보다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면, 한뼘 거리에 소래포구가 있다. 물가를 따라 횟집들이 가득했다.

 

온갖 오물과 버림받은 도구들로 가득한 시간의 무덤을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회를 먹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고단한 삶과 무심한 삶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 뒤로 서너 번 더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었지만 몇 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15년이 흘렀다. 지난해 그곳에 가야 할 일이 있어 가야만 했다. 버림받은 것들로 가득했던 물은 아파트 단지의 그림자로 채워졌고, 버린 자들이 살았을 뭍에는 콘크리트 도시가 들어섰다.

 

협궤열차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열차가 아니다.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을 태우고 다니기는 했으나 일등석 승객은 소금이었던 셈이다. 협궤열차는 58년 만에 버림받았다. 열차가 버림받으면서, 철도도 버려졌다. 철도가 버려지면서, 누군가의 삶도 버려졌을 것이다. 버리는 자가 되는 것이나, 버림을 당하는 자가 되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시간이 언젠가는 그 모두를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모든,

버려진 것들은,

버려질 만 했을 것이다.

 

어떤,

버림받은 것들은,

어쩌면 버림받지 말았어야 했다.

 

우린,

무엇을 버리고,

무엇으로부터 버림받았는가.

 

20031024_0321 소래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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