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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格] 말은 말이어야 하고, 글은 글이어야 한다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이다. 말이 글이 될 수 없고, 글이 말이 될 수 없다. 말을 글처럼 사용하면, 감정이 곡해된다. 글을 말처럼 사용하면, 진심이 왜곡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를 넘으면 그렇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을 건너면 그렇다. 

 

말은 바람 같다.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바람은 그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한다. 요통 치는 바람은 그 얼굴에 공포를 각인한다. 사방에서 오는 바람은, 사방으로 갈 수 있다. 어느 곳에서나 오는 바람은,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머물 수는 없는 것이 바람이다. 그것이 이치고, 그것이 순리다. 

 

움직이지 않으면 더는 바람이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바람도 사라진다. 사라진 바람은 잊히지만 갇혀버린 바람은 흉기가 되기 쉽다. 사라져서 잊혀야 하는 바람이, 바위처럼 자리를 잡고 남겨지면, 두고두고 또 다른 바람이 찾아든다.

 

그런 바람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처럼, 소리 없이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다. 근거 없는 소문으로 자라, 근본 없는 거짓의 열매를 맺는다. ‘의미’ 만큼 중요한 ‘감정’은 발라내고, ‘사람’이 만든 것이 ‘사람’을 해한다. 물이 고이면 썩어서 냄새가 나고, 말이 고이면 변해서 독이 된다. 말이 글처럼 쓰이면, 순리가 사라진다. 

 

 

글은 바위 같다. 언제나 그 자리에 굳건하게 서 있는 바위는 든든한 의지가 된다. 제자리를 벗어나 이리저리 구르는 바위는 그 자체가 흉기가 된다. 굴러다니는 바위는 폭력이 되고, 한곳에 뿌리내린 바위는 고향이 된다. 움직이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자리에 있고, 두고두고 남겨야 할 것은, 그렇게 거기 있어야 한다. 그것이 순리고, 그것이 이치다.

 

화살처럼 이리저리 허공을 가르면 더는 바위가 아니다. 날아가는 순간, 바위는 본성을 잃는다. 잊힌 바위는 야사가 되지만 자리를 떠난 바위는 무기가 되기 쉽다. 제 자리에 머물며 존재해야 하는 바위가, 바람처럼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파란을 일으킨다. 

 

그런 바위는 태초의 존재처럼, 듬직하게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다. 날카로운 목검처럼 날아가서, 상처를 남긴다.  부서져 돌멩이가 되고 깨어져 자갈이 되면, 마음을 담던 그릇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돌칼이 되고 돌화살이 된다. 빈 수레가 움직이면 시끄럽고, 글에 발이 달리면 여기저기 자국이 남는다. 글이 말처럼 쓰이면, 이치를 벗어난다. 

 

만나서 해야 할 말이 있다. 표정에 담은 마음, 음성에 담긴 감정. 그것들이 모두 함께해야 진심이 제대로 전해지는 까닭이다. 만날 수 없다면, 카메라를 앞에 두고 얼굴을 마주하고, 그마저도 힘들다면, 목소리가 이심전심의 다리가 되어야 할 때가 있다. 

 

얼굴을 마주해야 할 때 목소리만 오가거나, 말로 전해야 할 것을 글로 전하면, 등을 보이고 인연을 끊을 일이 많아진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의 법어처럼, “말은 말이요, 글은 글이다”. 그래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절해도, 기본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격(格)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격(隔)으로 가로막힌 삶이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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