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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병과 싸울 수는 없다. 다만, 견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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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이라는 세월은 머리로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길다. 만약 짧다고 기억하고 있다면, 그 시간이 최소한 살만 했다는 뜻이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간의 길이가, 다르게 체화되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빛의 속도로 여행을 했던가, 시간의 흐름을 세포의 영역에서 경험했을 때다. 빛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세포는 생명의 줄기인 만큼 누구나 겪을 수 있다.

 

물리적인 고통, 통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설명하기가 힘들다. 수많은 너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나의 문제인 까닭이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생활해야 하는 가족의 힘겨움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지켜보는 것과 겪어야 하는 것은 다르다. 세포가 몇 개인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뼈마디가 몇 개인지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눈물샘이 말라서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만큼, 통증의 감옥에 갇혀 있어 보면 알게 된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 아프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프다는 이유로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가 아닌 모든 사람은 ‘너’이기 때문에, 내가 아닌 모든 사람은 각자의 ‘나’로 살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발목에 병이라는 쇠고랑을 차고, 7년이라는 세월을 끌고 다니며 살아보면, 남는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그리움은 인생의 이정표 같은 것이다. 가장 어려운 순간, 가장 힘겨운 시간, 가장 외로운 하루. 그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때 마음속에서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것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생각도 마음도 아닌 몸으로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과 사람 속에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는 순간을 결국 마주하게 된다.

 

어떤 만남은 우연처럼 다가온다. 어떤 관계는 필요에 의해 맺어진다. 어떤 인연은 운명처럼 엮어진다. 만남의 시작은 그렇게 분류가 가능하다. 관계의 모습은 현실이 알려준다. 인연의 의미는 순간에 드러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아는 데 필요한 시간은, 찰나처럼 짧다. 우연은 바람처럼 지나가 다시 찾아오지 않고, 관계는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 바로 숙청된다. 남는 것은 오직 하나 인연으로 엮어진 사람뿐이다.

 

인연으로 엮어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사람, 살아 있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함께 같은 시간의 길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어려울 때 상처를 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멸시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힘이 없다고 발로 밟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나면, 아는 세상, 보는 세계가 달라진다. 시간이 공간이 되고, 공간이 시간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때부터 시간으로서의 오늘은, 그 이전의 오늘과 달라진다.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가치가 달라진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산문집의 제목인 ‘OOO는 O들 O에, OOO는 OO’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태생부터 악한 사람이 많다. 태생부터 저질인 사람이 많다. 도둑질하면서 도둑인 줄 모른다. 모든 것이 빨라진 세상에서는, 그들이 물들이는 속도도 빠르다. 나누기 위해 쓰는 글이다. 나누기 위해 공개하는 사진이다. 여기서 나눈다는 것은, 공유하자는 것이지, 빼앗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데 나누는 순간 번개처럼 가져가 제 것으로 둔갑시키는 존재들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지어둔 책 이름을 O으로 꼭꼭 싸매야 하는 이유다. 어쩔 수 없이 좋은 사진을 볼품없는 사진으로 분장시키는 이유다. 머릿속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면 그럴 수 있는지 충분히 안다. 마음속에 어떤 것을 채우고 살면 그럴 수 있는지 알고도 넘친다. 그런 사람은 그냥 계속 그렇게 살면 된다. 자기 정체를 모르는 사람은, 평생 그렇게 사는 것이, 그들의 순리다.

 

뜬금없이 옆길로 샜다. 글이라는 것이 그렇다. 방향을 잡고 잘 가다가도, 욱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으면, 이렇게 딴 길로 잠깐 돌아갈 때가 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글이 살아 있으면 그렇게 된다. 책에 활자로 고정되기 이전의 글은, 그래서 더 매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책 속에 갇힐 운명이 아닌 글들은 그래서 더 싱싱하기도 하다.

 

다시 가던 길로 돌아왔다. 그렇게 가치가 달라진 시간을 살면서 견딜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그 지난하고 막막한 시간 동안 눈에 보이는 천사처럼 지켜준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기도로, 어떤 이는 물질로, 어떤 이는 시간으로. 그들은 ‘그들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무한의 시간과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했다는 것은,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세상의 기준에서 바닥을 살아갈 때, 곁에서 함께해 준 10명의 수호자를 소개할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사실이다. 애초부터 이렇게 살아내는 것이 끝이고,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고, 시간 속에서 이유 없는 시간은 오지 않는다.

 

멎으려고 하는 심장과 멈추려고 하는 허파의 몸부림과 맞설 때, 침묵하며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정복’이라는 단어는 교만한 자들의 언어이고, ‘투병’이라는 낱말은 아프지 않은 자들의 오해다. 인간이 정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병과 맞서 싸우려는 오기를 갖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정복 대신 허락을 바라고, 투병 대신 소망을 구해야 한다. 병과 싸울 수는 없다. 다만, 견딜 뿐이다. 다른 방법은 없지만,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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