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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철도가 있었다. 수원에서 인천, 정확하게는 수원과 송도를 오갔다. 폭이 좁은 협궤열차였다. 1937년 3월 1일 기차가 처음 달렸다. 1995년 12월 31일 기차는 달리는 것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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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5. 07:10

라디오가 있는 풍경 (1)

라디오가 있는 풍경 하나, 지구.

 

아침의 라디오는 텃밭에서 갓 따서 담아온 싱싱한 야채 바구니와 같다. 경쾌한 음악과 밤 새 일어난 온갖 새로운 소식이 넘친다. 새벽 이슬을 온몸 가득 머금고 아침상에 오르는 싱싱한 채소처럼 늘 신선하다. 상큼하거나 힘 있는 목소리가 언제나 햇살처럼 흘러나오는 아침의 라디오는 그래서 늘 새롭다.


일하러 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차 안에서 맞이해 주는 라디오는 원두 커피 한 잔과 같다. 잠을 깨우고, 몸을 펴게 하는 그 소리로 사람들은 하루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너무 진한 커피가 속을 쓰리게 하듯, 듣고 싶지 않는 녀석의 외침을 강재로 들어야 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점심의 라디오는 삶은 계란의 노른자와 같다.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알맞게 따뜻하고, 고소한 뒷맛이 가득한 반숙을 말함이다. 살며시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느낌처럼. 하얗고 노란 재치의 알멩이들이 톡톡 튀어 나오는 목소리와 음악이 어우러진 점심의 라디오는 그래서 행복하다.


번잡하다 못해 소란스러운 식당에서 돌아와 차 한잔과 마주하는 라디오는 헤이즐넛이 담겨 있는 커피 포트와 같다. 향기롭고, 구수하고, 은근한 편안함이 온 몸을 감싸주는 것이 더 없이 여유롭다. 혹시라도 한없이 밀려오는 졸음이 괴롭히면, 라디오는 녀석과 맞설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친구다.


저녁의 라디오는 하얗고 부드러운 쌀죽 한 그릇과 같다. 누가 들어도 아늑하고, 누가 말해도 거슬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가득하다. 아무런 맛도 없지만 간장 한 종지, 김 한 장만 있어도 누구나 기꺼워 할 수 있는 죽 한 그릇처럼 풍성하다.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고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저녁의 라디오는 그래서 여유롭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과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적당히 어우러진 세상에서, 저녁의 라디오는 마음 한 자락을 녹여낸 국화차 한잔과 같다. 흔적 없는 향기로 다가오고, 말할 수 없는 느낌이 가득한 찻잔 속엔 하루의 피곤함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럴 때 옆에서 나지막히 속삭여주는 라디오는 언제나 말없이 옆을 지켜주는 아내 같아서 사랑스럽다.



라디오가 있는 풍경 둘, 달.


1 생전 처음으로 전혀 다른 시간 속의 세상을 경험하던 날. 그 속에 홀로 깨어 있어야 했을 때의 그 경이로움, 불안함,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 이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섞여 마음속을 온통 아득하고, 초조하게 만들던 그 때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시험이 있던 날. 이전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의 벽을 홀로 넘었다. 아이에서 청소년이 되었으니 나름대로는 시험에 대한 준비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빳빳하게 다려진 검정 교복, 계급장처럼 ‘中’이라는 배지가 박힌 모자가 가지런히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날 이전까지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의 세상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깨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일도 없었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다만, ‘착한 어린이’로 자야 할 때 자고,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면 그만 이었다. 그 시간이 내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경험해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2 세상이 없어진 듯 사방이 적막한데, 내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그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을 그 날 처음 알았다. 하늘부터 땅까지 온통 어둠으로 이어져 있을 때, 시계 바늘이 두 시에 걸려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구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나 혼자 깨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신기했다, 나 혼자 새벽까지 흘러왔다는 것이. 두려웠다, 자야 할 시간에 깨어 있다는 것이. 날이 밝은 후 어떤 현상으로 내게 다가올 것인지 경이로웠다, 그 시간에도 집 밖에서는 간간이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이. 초조했다, 마루의 괘종시계로부터,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책 속에서 보아왔던 ‘우주’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난 그날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 날 이후, 혼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어우러지는 그 시간을 난 ‘우주적인 시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가 사람들 속의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 속의 작은 우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그 날의 첫 탐험 이후 ‘우주적인 시간’ 속으로 가야 할 땐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함께 가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그저 평범한 낯 시간의 일상과 다들 바가 없었다. 외롭지 않아 좋았지만, 혼자 있음으로 맛 볼 수 있는 것들이 지극히 작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라디오를 발견했다. 제 몸 보다 더 큰 전지를 고무줄로 칭칭 감아 붙들고 있던 낡은 라디오. 한 동안 다락에서 버림 받은 채 있어야 했던 녀석은 그렇게 할아버지에게서 내게로 왔다. 그리고 나의 ‘우주적인 시간’에 없어서는 안 될 항해사요, 동료요, 친구가 되었다.


라디오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뒤로 할아버지의 라디오가 수명을 다하자, 멋진 휴대용 라디오를 선물로 받았다. 작고 멋스러웠던 녀석은 밤이 아니라 낮에도 나와 항상 함께 했다. 학교를 오가는 길, 자전거를 탈 때, 도서관에서 늘 곁에 있어 주었다. 그 뒤로 20년 넘게 시간이 흘렀고, 아직도 라디오는 내 일상의 풍경 중 일부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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