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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旅] 밤 기차를 타고, 그리움과 함께, 밤의 터널을 지난다 @ 궁싯거리며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머리에 느낌표가 찍힌 지 십 분 만에, 옷을 들고 배낭을 메고 나섰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 계획, 준비. 셋 모두 집에 버려뒀다. 백만 년에 한 번쯤은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준비’ 없이는 떠나지 못하는, 강박증을 넘어 중독 같은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고비사막 한복판에서 테플론 테이프를 찾아도 가지고 있을 인간, 그것이 바로 나라는 인간의 정체다. 일어날 수 없는 상황도 생각하며 준비하는 것, 아마 태어날 때부터 어떤 존재가, 본능이라는 DNA에 코드를 심어 놓은 것이 틀림없다. 이건 다빈치 코드 보다 더욱 치밀하고 은밀하다. 아무 생각 없이 준비 없이 계획 없이,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결국 나의 본능을 완벽하게 무.. 2019. 9. 24. 더보기
[詩] 버린다는 것, 버림받았다는 것 수인선 철도가 있었다. 수원에서 인천, 정확하게는 수원과 송도를 오갔다. 폭이 좁은 협궤열차였다. 1937년 3월 1일 기차가 처음 달렸다. 1995년 12월 31일 기차는 달리는 것을 멈췄다. 철로의 폭이 좁으니, 기차의 폭도 좁았다. 양쪽 자리에 앉아 팔을 뻗으면, 앞에 앉은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감성의 편에서 보면 낭만이 있었고, 감정의 편에서 보면 불편했다. 그 기차가 지나는 곳에 소래포구가 있다. 기차가 달리는 것을 멈췄어도, 한동안 철로는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군데군데 살아남아서 검붉은 녹을 입으며 나이를 먹어 갔다. 2003년 그렇게 세월을 몸으로 견디고 있는, 협궤열차의 한 자락을 찾아 소래포구를 찾았었다. 철로가 지나던 다리를 기차 대신 사람이 건너다녔다. 협궤가 놓인 다리는 .. 2019. 6. 25. 더보기
[江] 다뉴브강, 아무리 슬퍼도 강물은 바라보기만 해야한다 1995년 3월, 그 곳에 있었다. 개발되기 이전의 한강처럼 황량했고, 잿빛 물살은 이국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물을 거스르는 배는 거의 없었다. 가끔 화물을 실은 배가 물살을 갈랐다. 강변은 적막했지만, 인적은 있었다. 걷는 사람 보다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았다. 동행 없이 혼자 강가에 있는 ‘그’를 그곳에서 만났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가는 시간의 길목이었다. 강물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던, 50대 남자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셔터를 눌러야 하나, 그냥 지나쳐야 하나. 망원 렌즈로 본 그의 뒷모습은, 강물보다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듯했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로 했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물을 따라 걸었다. .. 2019. 6. 20. 더보기
[想] 그리움의 단상(斷想) ; 그리움은 과거가 아닌 미래로부터 오는 메시지. #1 뜬금없이 누군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렇게 그리움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대책이 없다. 몇 날 며칠을 머리에서 맴돌고 마음 한구석에서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그립다 한들 모두가 같은 그리움일까. 그리움에도 종류가 있고, 강약이 있고, 색깔이 있다. 그것은 이유 없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 조용히 자취를 감출 뿐이다. 거의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워 있어야 했다.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했던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지치니 몸이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나 보다. 몇 년째 고생하게 만들고 있는 지병(持病)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좀 쉬어야겠다고 난리 치는 몸의 구석구석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다. 덩그러니 방 안에 혼자 누워 있으면 틈을 주지 않고 찾아 든다. 아픔이 커지면 커지는 대로, 잠시 잦아들면 그.. 2019. 6. 18. 더보기
[詩] 신발의 의미, 아직 이편에서 걷는다는 것 몸에 옷이라는 것을 걸치고, 발에 신발이라는 것을 신는다. 태고부터 엉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직 인간만이 옷과 신발을 갖게 됐다. 그뿐인가. 머리에는 모자라는 것을 얹고, 손에는 장갑을 낀다. 자연으로부터 몸둥이를 보호하려고 한다지만 어쩌면 몸둥이를 자연과 격리시키고 싶은 불안때문인지 모른다. 원죄때문이다. 신발에 흙 묻힐 없이 사는 도회지 사람들에게 그것은 생존 경쟁의 상징이다. 이리저리 밀리는 버스 안에서, 숨막히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신발을 진지하게 바라 본 적이 있는가? 시장을 누비는 지게꾼, 좌판에서 나물을 파는 노파, 어깨에 가족을 메고 사는 아버지, 언제나 자식이 먼저인 어머니, 잰걸음으로 세상을 누비는 아이들. 나의 신발이 있다는 것은, 나는 살아있다와 동의어. 제 각각 다른 가.. 2014. 8. 2. 더보기
[詩] 존재하지 않으면, 인연은 없다 이런 사람을 그런 곳에서 만날 때가 있다. 저런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만날 때도 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과 동의어일지 모른다. 살아 있으니까 만나는 것이고, 만났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만남이라는 것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인생이라는 것이 생각되로 되지 않는 길을 가는 것 아니던가. '저런 사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 '이런 인간 정말 있네' 하고 깨닫게 하는 질나쁜 인간. 저런 사람, 이런 인간, 그 속에 나. 그렇게 섞이고 얽히고 엮이는 것이, 인생, 사람이 산다는 것 아니겠나. 다만, 안타까운 것은 언제나 내가 가는 그 길 위에는 '저런 사람' 보다는 '이런 인간'들을 마주치게 된다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인연의 양과 질은 공평한.. 2014. 8. 1. 더보기
[山] 삼악산, 시원한 강줄기를 보며 즐기는 암릉산행 관심을 갖지 않으면 바로 곁에 두고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천이다. 그것의 존재를 깨닫게 만든 것이 관심이면 좋겠지만 때로는 우연이 그것의 발견에 일조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야릇한 감동과 흥분을 느끼게 된다. 만약 그것의 발견이 전에는 가보지 않았던 낯설고 생경한 곳에서 이루어진다면, 마음속에 찾아드는 감정의 파고는 좀 더 높아진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국도를 따라 달리다 춘천의 문턱에 이를 즈음이면, 국도 오른쪽으로 물길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강 건너편으로 작은 기차역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 가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강촌역이다. 강촌역이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왼쪽에 솟아있는 산자락 하나가 국도를 따라 한 동안 이어진다. 바로 삼악산이다. 삼악산은 작고 아담한 산이다... 2010. 11. 17. 더보기
[感]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디지로그 엽서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디지로그 엽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엽서의 만남 파란 하늘을 가르고 비행기가 지나간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혹시, 샌프란시스코? 비행기를 볼 때 마다, 비행기를 탈 때 마다 머리 속에는 샌프란시스코가 맴돈다. 부다페스트, 로마, 취리히, 동경……. 그 곳에 있을 때도 마음은 샌프란시스코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일 때 ‘샌프란시스코’를 알았다. 아니 들었다. 스캇 매켄지(Scott Mackenzie)가 노래한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를 처음 듣는 순간, 샌프란시스코는 마음속으로 들어와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은 꽃이 되었다. 그 후로 20년 하고도 몇 년이 흘렀다. 아직 샌프란시스코는 마음에만 있는 꽃이고, 몸은 그곳을 그리워한다. 이유는 모른다. 한번도 가.. 2007. 5. 6.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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