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팍팍하다" 할 때의 그 '팍팍'이, 낱말에서 갑자기 넝쿨이 됐다. 문장 속에 활자로 묻혀있던 낱말이, 마음속에 살아있는 넝쿨이 됐다. 언제인지 모르는 그때에,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그렇게 뿌리를 내렸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떤 것은 사실 안 해도 그만인 것이라는 것,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대부분은 정말 꼭 해야 하는 것, 그런 것이고 그래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아마 그 무렵이다.
나이가 드는 것을 늙는다고 한다면, 늙기도 전에 그것을 알았다. 나이에 맞는 생각이 나이에 맞는 삶을 만든다. 너무 일찍 그 길을 들어가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고, 너무 늦게 그 길을 찾았어도 굳이 흉볼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좀 더 나이 들어 알게 되면 좋은 것이 있다. 그때가 어긋나면 몸은 생기를 잃고 삶은 방향을 잃기 십상이다.
잃어서 빈자리를 채운 것인지, 비집고 들어오니 잃어버린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것이 넝쿨처럼 마음에 뿌리를 내리는 순간, 그렇게 '팍팍'을 얻고 그렇게 '유머'를 잃었다. 팍팍 이라는 형용사를 마음에 들인 대가로, 유머라는 명사는 과거라는 무덤에 묻어야 했다. 사실은 그것을 묻은 것인지 잃은 것인지, 사라졌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웃지 않을 때의 얼굴은 온화했고, 웃을 때의 얼굴은 따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랬다고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는 그들의 말이 그렇다. 칠흑의 어둠처럼 아무런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을 만큼, '팍팍'의 위세와 기세는 대단했다. 달라진 웃음 코드는 타인들과 공감할 수 없게 비틀어졌고, 재미있고 유쾌하던 만남과 대화는 사실만 모래처럼 쌓이는 사막으로 변했다.
멜로디 없이 가사만 있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멜로디만 있고 가사가 없는 노래도 노래가 아니다. 처음부터 없었다면 그것의 부재에서 오는 절벽이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있던 것이 사라지면, 그것이 빈자리에는 절벽이 남는다. 팍팍에 밀리고 팍팍에 치이고 시간에 끌려가다, 조금이 아닌 일순간에 그것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처럼 일순간에 그것의 부재를 깨달았다.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 알게 되면, 절망보다는 황당함이 앞선다. 잃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당황스러운 현실이 모든 곳으로부터 날을 세운다. 화살촉처럼 날카로운 감정들이 내면으로 날아가고, 과녁도 없이 날아간 화살은 굳이 꽂히지 않아도 될 곳에 깊이 박힌다.
화살들은 시간을 머금으며 서서이 품고 있던 독을 내뱉는다. 넝쿨로 뒤덮인 마음 사이사이에 가시처럼 박힌 화살은, 마음에만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몸을 파고들어 가 생명을 빼앗기 시작한다. 몸이 스스로 살기 위해 절규를 하는 순간, 아직 살아있다면 새로운 절망이 시작된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고통과 싸우면 투병(鬪病)이고, 그것에 체념한 채 고통에 숨죽이면 와병(臥病)이다.
그렇게 투병으로 시작된 절망스러운 고통과의 삶은, 이제는 와병으로 옮겨가 시간을 헤아린다. 팍팍한 세상의 고달픔이 뿌리를 내린 넝쿨, 그 넝쿨 사이에 박힌 감정의 화살, 그리고 그 화살 사이를 폭풍처럼 흐르는 시간. 그것에 갇히면 의미 있는 삶이란 기준이 사라진다. 세상의 모든 의미는 가치 없는 것이 되고, 존재하는 것의 가장 큰 의미는 부재가 되며, 허무의 뿌리와 절망의 공포를 만나는 순간이 온다.
겨울이 오면, 한해살이풀이 꽁꽁 언 땅 속에 몸을 숨기고, 여러해살이풀은 꽁꽁 언 땅 속에 마음마저 감춘다. 봄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봄이 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 없이 절망 없이 고통스럽지만 버텨낼 수 있다. 그러나 병을 만나 의지를 불태우며 투병을 하다, 병에 갇힌 와병의 상태가 되면, 세상에 남는 것은 오직 하나 기다림 뿐이다.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병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희망은 의심을 품고 바라는 것이지만 믿음은 의심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풀과 나무들이 겨울 속에서 견디는 것은 그들이 봄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픈 사람은 끝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마음속에 온통 투지와 희망만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은 의심을 감추기 위한 가면일 때가 많다.
의심은 '팍팍'의 결실, 그것의 열매다. 그것이 열매를 내고, 해를 넘길 때마다 풍년이 되면, 사람은 영혼까지 병들기 시작한다. 영혼이 병든 후, 그 뒤에 기다리는 것은, 말할 수 없다. 말로 담지 못할 슬픔, 글로 쓰지 못할 절망, 그 너머에 그것이 있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그 길 너머까지 가지 말아야 한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는 가며, 이 팍팍한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누구나 팍팍한 세상을 팍팍하게 살아간다. 알면서 살고 모르면서 산다. 그냥 그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에 마음을 휘둘리기 시작하면, 넝쿨처럼 마음을 뒤덮고 죽음의 뿌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유머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희망보다 따뜻하고, 그것은 의지보다 든든하다. 유머를 잃으면 건강을 잃는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전부 잃는다. 유머를 잃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항상 감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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