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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旅] 밤 기차를 타고, 그리움과 함께, 밤의 터널을 지난다 @ 궁싯거리며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머리에 느낌표가 찍힌 지 십 분 만에, 옷을 들고 배낭을 메고 나섰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 계획, 준비. 셋 모두 집에 버려뒀다. 백만 년에 한 번쯤은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준비’ 없이는 떠나지 못하는, 강박증을 넘어 중독 같은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고비사막 한복판에서 테플론 테이프를 찾아도 가지고 있을 인간, 그것이 바로 나라는 인간의 정체다. 일어날 수 없는 상황도 생각하며 준비하는 것, 아마 태어날 때부터 어떤 존재가, 본능이라는 DNA에 코드를 심어 놓은 것이 틀림없다. 이건 다빈치 코드 보다 더욱 치밀하고 은밀하다. 아무 생각 없이 준비 없이 계획 없이,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결국 나의 본능을 완벽하게 무.. 더보기
[山] 어둠 속을 지나는 바람은, 기억의 편지를 품고 온다 山・함박눈이 내리는 날, 마지막 기차가 떠나는 시간 즈음, 혼자서 오르는 산을 좋아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함박눈은, 겨울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감사하게 받고, 고맙게 즐기고, 겸손하게 마주해야 한다. 선을 넘으면, 선물이 재앙이 된다. 적어도 겨울의 함박눈은, 계절이 주는 최고의 호사다. 눈이 오면 산을 생각하고, 산속에 들면 눈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눈이 있는 겨울 산과 눈이 없는 겨울 산은, 같은 산이면서 전혀 다른 산이기도 하다. 바람이 있는 가을 산과 바람이 없는 가을 산은, 같은 산이면서 전혀 다른 산이기도 하다. 비가 있는 여름 산과 비가 없는 여름 산은, 같은 산이면서 전혀 다른 산이기도 하다. 산은 그래서 언제나 두 얼굴, 때로는 세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얼굴을 하고.. 더보기
[感] 빨래 예찬, 노동과 힐링 사이 햇살이 기세 등등할 때가 제격이다. 푹푹 찌는 찜통 공기까지 더해지면 녀석들에게 더욱 좋다. 거기에 상큼한 바람까지 넉넉하게 불어주면 금상첨화, 그것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온갖 더러움을 말끔하게 걷어냈다. 이제 구름 몇 점 떠 있는 파아란 하늘을 보며, 줄 하나에 몸을 걸고 햇살 따라 바람 따라 일광욕을 즐기면 된다. 그 순간 만큼은 귀천이 없다. 그저 맑은 물로 함께 몸을 씻어낸 처지인 만큼, 허물없는 친구이자 부끄러울 것 없는 동무다. 빨래질 당한 녀석들은 누군가의 삶의 한 자락에서, 오늘의 한 조각을 만들어낸 오브제가 된다. 그렇게 팔짜 좋게 늘어지게 햇살이나 바람을 느끼면 된다. 녀석들의 주인은 빨래라는 노동을 통해 힐링의 순간을 만끽한다. 하긴 세탁기가 빨래해 주는 세상에, 빨래는 더 이상 .. 더보기
[詩] 신발의 의미, 아직 이편에서 걷는다는 것 몸에 옷이라는 것을 걸치고, 발에 신발이라는 것을 신는다. 태고부터 엉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직 인간만이 옷과 신발을 갖게 됐다. 그뿐인가. 머리에는 모자라는 것을 얹고, 손에는 장갑을 낀다. 자연으로부터 몸둥이를 보호하려고 한다지만 어쩌면 몸둥이를 자연과 격리시키고 싶은 불안때문인지 모른다. 원죄때문이다. 신발에 흙 묻힐 없이 사는 도회지 사람들에게 그것은 생존 경쟁의 상징이다. 이리저리 밀리는 버스 안에서, 숨막히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신발을 진지하게 바라 본 적이 있는가? 시장을 누비는 지게꾼, 좌판에서 나물을 파는 노파, 어깨에 가족을 메고 사는 아버지, 언제나 자식이 먼저인 어머니, 잰걸음으로 세상을 누비는 아이들. 나의 신발이 있다는 것은, 나는 살아있다와 동의어. 제 각각 다른 가.. 더보기
[詩] 존재하지 않으면, 인연은 없다 이런 사람을 그런 곳에서 만날 때가 있다. 저런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만날 때도 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과 동의어일지 모른다. 살아 있으니까 만나는 것이고, 만났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만남이라는 것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인생이라는 것이 생각되로 되지 않는 길을 가는 것 아니던가. '저런 사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 '이런 인간 정말 있네' 하고 깨닫게 하는 질나쁜 인간. 저런 사람, 이런 인간, 그 속에 나. 그렇게 섞이고 얽히고 엮이는 것이, 인생, 사람이 산다는 것 아니겠나. 다만, 안타까운 것은 언제나 내가 가는 그 길 위에는 '저런 사람' 보다는 '이런 인간'들을 마주치게 된다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인연의 양과 질은 공평한.. 더보기
[感] 라디오가 있는 풍경, 라디오와 함께 가는 세상 라디오가 있는 풍경 (1)라디오가 있는 풍경 하나, 지구. 아침의 라디오는 텃밭에서 갓 따서 담아온 싱싱한 야채 바구니와 같다. 경쾌한 음악과 밤 새 일어난 온갖 새로운 소식이 넘친다. 새벽 이슬을 온몸 가득 머금고 아침상에 오르는 싱싱한 채소처럼 늘 신선하다. 상큼하거나 힘 있는 목소리가 언제나 햇살처럼 흘러나오는 아침의 라디오는 그래서 늘 새롭다. 일하러 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차 안에서 맞이해 주는 라디오는 원두 커피 한 잔과 같다. 잠을 깨우고, 몸을 펴게 하는 그 소리로 사람들은 하루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너무 진한 커피가 속을 쓰리게 하듯, 듣고 싶지 않는 녀석의 외침을 강재로 들어야 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점심의 라디오는 삶은 계란의 노른자와 같다.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 더보기
[想] 산다는 것은, 날갯짓을 멈출 수 없다는 것 이런 분, 저런 놈, 그런 년. 수적으로는 밤하늘의 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적다. 그런데 행동 또는 작태를 보노라면 그야말로 '별의별'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인간 세상이고, 세상에 사는 인간들이 그렇다. 좋은 분 같았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다. 나쁜 놈 같았는데, 겪어보니 그런 천사가 따로 없다. 어수룩해 보여 은근히 무시했는데, 나중에 보니 올려다보지도 못할 나무더라. 말도 말고, 탈도 많고, 사연도 많고, 웃음도 많고, 눈물도 넘쳐난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고, 세상을 산다는 것이 그렇다. 그렇게 모여 있어서 '사람 사는 세상'이 된다. 함께 사는 세상은 불편하고 번거롭고 서글프고 위험할 때가 많다. 늘 벗어나고 싶고 늘 도망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마음 돌리고 신발까.. 더보기
[詩] 아빠 어렸을 적에, 그때 그랬지 15년은 넘었고 20년은 채 되지 않았다. 천상병 시인의 찻집 귀천을 들렀다가, 인사동 골목에서 만났던 찻집 '아빠 어릴적에'. 그 후로 인사동을 지나칠 때 마다, 이사간 옛집을 찾아가듯 한번 씩 들러 눈 인사를 나누던 곳. 처음 봤을 때는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했고, 어느날 부터는 아들의 아빠가된 나를 돌아 보았었다. 정리하던 사진 속에서 만난 필름, 잊고 살던 친구처럼 반갑다. 아련한 시간 냄새가 머릿속 저 깊은데서 밀려온다. 난 여전히 필름이 좋다. 필름의 그 불편한 기다림이 주는 설렘, 필름마다 조금씩 다른 미묘한 색감이 만들어 내는 흥분. 가마에 불을 지피고 도자기를 기다리는 장인의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셔터를 누를 때 마다 잘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 찍고, 보고, 마음에 안 .. 더보기
[感] 우리의 시간 속에서, On & Off 살아가다 보면, 살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있을 때가 있다. 하늘 한번 못 보고 몇 달을 그렇게 숨쉬고 있을 때가 있다. 어제 그랬던 것 처럼 밥을 먹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잠을 자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옷을 입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신발 신고 집을 나선다. 앞에서 잡아 당기고, 뒤에서 밀어부치며, 숨 고르기 한번 못하게 하는 그런 시간이 있다. 살아지다 보면,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 말할 때 마다 가슴이 미어질 때가 있다. 말하는 그이나 말 못하고 버티는 이몸이나, 힘겨운 세상살이 입타령이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견디겠는가. 잔인하지만 이몸 보다 못한 이를 보며 때로는 위안을 삼고, 비굴하지만 너무도 부러운 저쪽편 사람들을 보면서 시간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살려하다 보면.. 더보기
[詩] 지나는 길에 스쳤을 뿐이다. 인연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지금을 살아낼 뿐이다. 기다림으로 미래를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으로 지금을 밟고 나아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알게되겠지만 살아낸다는 것, 지금을 버틴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잔인하고 처절할 때가 있고, 기쁨이나 행복도 함께하는 친구인 경우도 있다. 우리 아이도 당신의 아이도, 작은 세상에서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부모는 아이를 창조한 존재가 아니라,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길이 되어 주었을 뿐이다. 그것을 잊는 순간부터 아이는 양육이 아닌 사육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길들임의 대상이 된다. 20년이 흘렀다. 헝가리에서 만났던 두 아이를 본 것이. 형제처럼 다정했지만 친구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친구처럼 편안한 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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