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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志] 살아낸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보내는 편지 외국 사람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본 것은 외삼촌 생신 잔치 때였다. 미군 부대 군무원이던 외삼촌은 해마다 생신이 돌아오면 생일잔치를 했다. 가족, 친구, 부대에 근무하는 동료나 미군들까지, 아는 사람과 그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까지, 모두 초대해 그렇게 생일잔치를 했다. 하루를 넘겨 이틀이나 사흘 동안 그렇게 잔치는 이어졌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그런 모습을 처음 봤고, 해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이가 들었다. 외삼촌의 생신은 경이로운 연중 이벤트였고, 꼬맹이의 버킷리스트 첫 번째 목록에 올리기에 충분했다. "나중에 나도 어른이 되면, 가족, 친척, 친구들과 함께 멋진 생일잔치를 해야지..."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버킷 리스트에 올라 있고, 현실이 되지 못한 채 소망 리스트에 유배되어 있다. 형제, .. 더보기
[感]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것 이른 여름의 시작은 가장 몸이 즐거운 시간이다. 그 무렵 커다란 산 앞에 서는 것, 그 시간 깊은 계곡에 드는 것, 그즈음 숲길을 따라 걷는 것을 사랑한다. 나뭇잎의 변화는 멈추지 않는 바람이고, 시간을 타고 바람처럼 움직인다. 푸른 숲의 상쾌함은 그치지 않는 강물이고, 햇빛과 함께 강물처럼 흘러간다. 색은 생명이 없지만, 잎은 생명이 있다. 초록이 녹색이 색으로 존재하면 명사지만, 초록이 녹색이 잎 속에 살아가면 동사가 된다. 반짝이는 초록, 흔들리는 녹색, 시원한 그린, 상큼한 청록이 되어, 하늘로 땅으로 모든 곳으로 날아가고 흘러간다. 햇빛과 함께하면 반짝이고, 달빛 아래서는 흔들린다. 그 반짝임과 그 흔들림 앞에서 서면, 심장이 잠시 생각을 멈춘다. 머리로부터 오는 모든 신호를 차단하고, 머리가 .. 더보기
[想] 분분한 낙화, 절절한 낙엽 꽃이 지는 것은 슬프지 않다. 열매를 남기고 떠나는 까닭이다. 나뭇잎이 지는 것은 슬픔이다. 남긴 것 없이 사라지는 까닭이다. 형형색색 물든 낙엽은, 한 맺힌 그것의 피눈물이다. 흰눈이 내릴 것이다. 슬프지 않은 열매를 지키기 위해서다. 얼음이 얼 것이다. 슬픔의 눈물로 사라져간 낙엽을 가리기 위해서다. 꽃은 다시 피는 것이 아니고, 나뭇잎도 다시 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어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삶 속에,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새로운 시작이 멈추면, 아무것도 반복되지 않는 진정한 ‘끝’이다. 끝은 시작의 열매다. 시작 없이 끝이 있을 수 없고, 끝이 없는데 시작이 있을 수는 없다. 기쁨과 행복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고통과 절망도 .. 더보기
[詩] 버린다는 것, 버림받았다는 것 수인선 철도가 있었다. 수원에서 인천, 정확하게는 수원과 송도를 오갔다. 폭이 좁은 협궤열차였다. 1937년 3월 1일 기차가 처음 달렸다. 1995년 12월 31일 기차는 달리는 것을 멈췄다. 철로의 폭이 좁으니, 기차의 폭도 좁았다. 양쪽 자리에 앉아 팔을 뻗으면, 앞에 앉은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감성의 편에서 보면 낭만이 있었고, 감정의 편에서 보면 불편했다. 그 기차가 지나는 곳에 소래포구가 있다. 기차가 달리는 것을 멈췄어도, 한동안 철로는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군데군데 살아남아서 검붉은 녹을 입으며 나이를 먹어 갔다. 2003년 그렇게 세월을 몸으로 견디고 있는, 협궤열차의 한 자락을 찾아 소래포구를 찾았었다. 철로가 지나던 다리를 기차 대신 사람이 건너다녔다. 협궤가 놓인 다리는 .. 더보기
[想] 꽃이 사람보다 낫다. 양심(良心)이 국어사전 속에 갇혔다. 어떤 양심은 남극에 유배됐다. 다른 양심은 달의 뒷면에 버려졌다. 감옥을 가보지 않고도 감옥 속에 산다. 남극에 서보지 않고도 극한의 하얀 황무지에 산다. 달에 버려진 양심은 아예 존재 자체가 잊혔다. 우주 보다 넓을지도 모르는 양심을 그렇게 영어(囹圄)에 던져 놓고 열심히 죽기 위해 산다. 보이는 법도 무법이 되는 세상. 보이지 않는 양심이 힘을 쓸 재간이 없다. 본래부터 그랬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겨날 때부터, 양심은 거기 있는데 여기는 없다. 거기는 마음이고, 여기는 세상이다. 마음과 세상의 경계가 없어졌다. 경계가 없으니, 막을 수가 없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를 않는다. 고개를 숙여야 할 때, 눈을 부릅뜬다. 한 걸음 물러나야 할 때, 발길질하며 앞으로 나.. 더보기
[江] 다뉴브강, 아무리 슬퍼도 강물은 바라보기만 해야한다 1995년 3월, 그 곳에 있었다. 개발되기 이전의 한강처럼 황량했고, 잿빛 물살은 이국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물을 거스르는 배는 거의 없었다. 가끔 화물을 실은 배가 물살을 갈랐다. 강변은 적막했지만, 인적은 있었다. 걷는 사람 보다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았다. 동행 없이 혼자 강가에 있는 ‘그’를 그곳에서 만났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가는 시간의 길목이었다. 강물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던, 50대 남자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셔터를 눌러야 하나, 그냥 지나쳐야 하나. 망원 렌즈로 본 그의 뒷모습은, 강물보다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듯했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로 했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물을 따라 걸었다. .. 더보기
[詩] 신발의 의미, 아직 이편에서 걷는다는 것 몸에 옷이라는 것을 걸치고, 발에 신발이라는 것을 신는다. 태고부터 엉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직 인간만이 옷과 신발을 갖게 됐다. 그뿐인가. 머리에는 모자라는 것을 얹고, 손에는 장갑을 낀다. 자연으로부터 몸둥이를 보호하려고 한다지만 어쩌면 몸둥이를 자연과 격리시키고 싶은 불안때문인지 모른다. 원죄때문이다. 신발에 흙 묻힐 없이 사는 도회지 사람들에게 그것은 생존 경쟁의 상징이다. 이리저리 밀리는 버스 안에서, 숨막히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신발을 진지하게 바라 본 적이 있는가? 시장을 누비는 지게꾼, 좌판에서 나물을 파는 노파, 어깨에 가족을 메고 사는 아버지, 언제나 자식이 먼저인 어머니, 잰걸음으로 세상을 누비는 아이들. 나의 신발이 있다는 것은, 나는 살아있다와 동의어. 제 각각 다른 가.. 더보기
[詩] 존재하지 않으면, 인연은 없다 이런 사람을 그런 곳에서 만날 때가 있다. 저런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만날 때도 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과 동의어일지 모른다. 살아 있으니까 만나는 것이고, 만났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만남이라는 것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인생이라는 것이 생각되로 되지 않는 길을 가는 것 아니던가. '저런 사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 '이런 인간 정말 있네' 하고 깨닫게 하는 질나쁜 인간. 저런 사람, 이런 인간, 그 속에 나. 그렇게 섞이고 얽히고 엮이는 것이, 인생, 사람이 산다는 것 아니겠나. 다만, 안타까운 것은 언제나 내가 가는 그 길 위에는 '저런 사람' 보다는 '이런 인간'들을 마주치게 된다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인연의 양과 질은 공평한.. 더보기
[想] 산다는 것은, 날갯짓을 멈출 수 없다는 것 이런 분, 저런 놈, 그런 년. 수적으로는 밤하늘의 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적다. 그런데 행동 또는 작태를 보노라면 그야말로 '별의별'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인간 세상이고, 세상에 사는 인간들이 그렇다. 좋은 분 같았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다. 나쁜 놈 같았는데, 겪어보니 그런 천사가 따로 없다. 어수룩해 보여 은근히 무시했는데, 나중에 보니 올려다보지도 못할 나무더라. 말도 말고, 탈도 많고, 사연도 많고, 웃음도 많고, 눈물도 넘쳐난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고, 세상을 산다는 것이 그렇다. 그렇게 모여 있어서 '사람 사는 세상'이 된다. 함께 사는 세상은 불편하고 번거롭고 서글프고 위험할 때가 많다. 늘 벗어나고 싶고 늘 도망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마음 돌리고 신발까.. 더보기
[詩] 아빠 어렸을 적에, 그때 그랬지 15년은 넘었고 20년은 채 되지 않았다. 천상병 시인의 찻집 귀천을 들렀다가, 인사동 골목에서 만났던 찻집 '아빠 어릴적에'. 그 후로 인사동을 지나칠 때 마다, 이사간 옛집을 찾아가듯 한번 씩 들러 눈 인사를 나누던 곳. 처음 봤을 때는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했고, 어느날 부터는 아들의 아빠가된 나를 돌아 보았었다. 정리하던 사진 속에서 만난 필름, 잊고 살던 친구처럼 반갑다. 아련한 시간 냄새가 머릿속 저 깊은데서 밀려온다. 난 여전히 필름이 좋다. 필름의 그 불편한 기다림이 주는 설렘, 필름마다 조금씩 다른 미묘한 색감이 만들어 내는 흥분. 가마에 불을 지피고 도자기를 기다리는 장인의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셔터를 누를 때 마다 잘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 찍고, 보고, 마음에 안 .. 더보기
[感] 우리의 시간 속에서, On & Off 살아가다 보면, 살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있을 때가 있다. 하늘 한번 못 보고 몇 달을 그렇게 숨쉬고 있을 때가 있다. 어제 그랬던 것 처럼 밥을 먹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잠을 자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옷을 입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신발 신고 집을 나선다. 앞에서 잡아 당기고, 뒤에서 밀어부치며, 숨 고르기 한번 못하게 하는 그런 시간이 있다. 살아지다 보면,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 말할 때 마다 가슴이 미어질 때가 있다. 말하는 그이나 말 못하고 버티는 이몸이나, 힘겨운 세상살이 입타령이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견디겠는가. 잔인하지만 이몸 보다 못한 이를 보며 때로는 위안을 삼고, 비굴하지만 너무도 부러운 저쪽편 사람들을 보면서 시간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살려하다 보면.. 더보기
[詩] 지나는 길에 스쳤을 뿐이다. 인연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지금을 살아낼 뿐이다. 기다림으로 미래를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으로 지금을 밟고 나아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알게되겠지만 살아낸다는 것, 지금을 버틴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잔인하고 처절할 때가 있고, 기쁨이나 행복도 함께하는 친구인 경우도 있다. 우리 아이도 당신의 아이도, 작은 세상에서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부모는 아이를 창조한 존재가 아니라,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길이 되어 주었을 뿐이다. 그것을 잊는 순간부터 아이는 양육이 아닌 사육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길들임의 대상이 된다. 20년이 흘렀다. 헝가리에서 만났던 두 아이를 본 것이. 형제처럼 다정했지만 친구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친구처럼 편안한 형.. 더보기
[想] 사랑, '이벤트' 인플레이션 시대 자물쇠라는 쇳덩이에 사랑이라는 마음을 가져다 엮을 줄 누가 알았을까. 얽기설기 얽힌 그것들 속에서 빈틈을 찾기가 힘들다. 다른 이들의 언약의 흔적 속에서, 궁색하게 빈틈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사랑을 이야기하며, 영원한 사랑을 감격해 하며, 족쇄 하나에 사랑의 언약을 얽어맨다. 저쪽에는 그냥 재미다, 그냥 추억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이벤트를 희석하는 그들이 있다. 이쪽에는 오직 너만을 위한 사랑을, 비장함으로 맹서하는 의식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 마음에 담아둔 사랑 한 자락, 매일매일 실타래 풀듯이 풀어내어 보여주어야 하는 세상. 보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고, 믿고 싶어서 없는 것도 보여달라고 조르는 세상. 자물쇠 하나 걸어두는 것으로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누가 알았을까. 그 자.. 더보기
[詩] 평안, 그것을 소망하다 바람 잘 날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우리의 삶 속에서, 그대의 인생 속에서. 가끔은 잊고 살 때가 있기는 하다. 바람이 있다는 것을, 그 바람이 내 곁을 돌아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지는 못한다. 다만, 배 채우러 식당에 갔다가 몇 걸음 걸어 나오는 길, 깜박 잊고온 옷자락 가지러 돌아가는 시간 만큼 그것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대는 어떠한가? 당신의 삶은 바람 없이, 아니 순한 바람만 있는 그런 길인가? 부럽다. 부러워서 가슴이 저리다. 그만큼 간절하다. 평안을 가져다 주는 바람, 평안을 위해 아예 오지 않는 바람이.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대개 알게된다. 그대와 내가 거친 바람 속에 있다는 것을. 바람을 피할 수 없듯이, 사는 것..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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