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에 해당하는 기사 & 콘텐츠 35 건이 있습니다. ☀︎
🅘•IMAGINE•INSPIRE/ESSAY 2020.10.24
"사는 게 팍팍하다" 할 때의 그 '팍팍'이, 낱말에서 갑자기 넝쿨이 됐다. 문장 속에 활자로 묻혀있던 낱말이, 마음속에 살아있는 넝쿨이 됐다. 언제인지 모르는 그때에,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그렇게 뿌리를 내렸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떤 것은 사실 안 해도 그만인 것이라는 것,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대부분은 정말 꼭 해야 하는 것, 그런 것이고 그래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아마 그 무렵이다. 나이가 드는 것을 늙는다고 한다면, 늙기도 전에 그것을 알았다. 나이에 맞는 생각이 나이에 맞는 삶을 만든다. 너무 일찍 그 길을 들어가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고, 너무 늦게 그 길을 찾았어도 굳이 흉볼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좀 더 나이 들어 알게 되면 좋은 것이 있다. 그때가 어긋나..
🅘•IMAGINE•INSPIRE/LETTER 2020.10.17
그때는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고, 까마득하게 몰랐다. 이렇게 길어질 줄, 그리고 이렇게 갇히게 될 줄, 결코 알 수 없었다. 의지만 있다면 병(病)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인간적인 신념은 화석이 됐고, 희망만 있다면 언젠가 그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거품이 됐다. 신념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고, 희망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더라. 당해보니까, 그렇고. 살아보니까, 또 그렇다. 빼앗기는 것이다. 신념도 빼앗기고, 희망도 빼앗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혼자서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그것들이 사라지는 순간 혼자서 알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허술한지, ‘시간’이라는 괴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지식이 아닌 감각으로 느끼게 된다. 시간에게 빼앗기는 것이 무엇이 ..
🅘•IMAGINE•INSPIRE/LETTER 2020.09.11
하늘 아래 몸을 두고, 시간 위를 걷고 산다. 어떤 하늘 아래 사는 것은 중요하다. 어느 시간 위를 걷는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의미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웃을 수 있다. 지금,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웃지 못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조차 소중한 것이. 살아있는 삶이다. 살아가는 날들 속에 살아있는 하루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잊지말기를.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IMAGINE•INSPIRE/ESSAY 2020.09.03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이다. 말이 글이 될 수 없고, 글이 말이 될 수 없다. 말을 글처럼 사용하면, 감정이 곡해된다. 글을 말처럼 사용하면, 진심이 왜곡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를 넘으면 그렇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을 건너면 그렇다. 말은 바람 같다.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바람은 그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한다. 요통 치는 바람은 그 얼굴에 공포를 각인한다. 사방에서 오는 바람은, 사방으로 갈 수 있다. 어느 곳에서나 오는 바람은,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머물 수는 없는 것이 바람이다. 그것이 이치고, 그것이 순리다. 움직이지 않으면 더는 바람이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바람도 사라진다. 사라진 바람은 잊히지만 갇혀버린 바람은 흉기가 되기 쉽다...
🅗•HEART•HEALING/PHOTO with LIFE 2019.12.29
이른 여름의 시작은 가장 몸이 즐거운 시간이다. 그 무렵 커다란 산 앞에 서는 것, 그 시간 깊은 계곡에 드는 것, 그즈음 숲길을 따라 걷는 것을 사랑한다. 나뭇잎의 변화는 멈추지 않는 바람이고, 시간을 타고 바람처럼 움직인다. 푸른 숲의 상쾌함은 그치지 않는 강물이고, 햇빛과 함께 강물처럼 흘러간다. 색은 생명이 없지만, 잎은 생명이 있다. 초록이 녹색이 색으로 존재하면 명사지만, 초록이 녹색이 잎 속에 살아가면 동사가 된다. 반짝이는 초록, 흔들리는 녹색, 시원한 그린, 상큼한 청록이 되어, 하늘로 땅으로 모든 곳으로 날아가고 흘러간다. 햇빛과 함께하면 반짝이고, 달빛 아래서는 흔들린다. 그 반짝임과 그 흔들림 앞에서 서면, 심장이 잠시 생각을 멈춘다. 머리로부터 오는 모든 신호를 차단하고, 머리가 ..
🅗•HEART•HEALING/POHTO with MEMORY 2019.11.13
꽃이 지는 것은 슬프지 않다. 열매를 남기고 떠나는 까닭이다. 나뭇잎이 지는 것은 슬픔이다. 남긴 것 없이 사라지는 까닭이다. 형형색색 물든 낙엽은, 한 맺힌 그것의 피눈물이다. 흰눈이 내릴 것이다. 슬프지 않은 열매를 지키기 위해서다. 얼음이 얼 것이다. 슬픔의 눈물로 사라져간 낙엽을 가리기 위해서다. 꽃은 다시 피는 것이 아니고, 나뭇잎도 다시 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어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삶 속에,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새로운 시작이 멈추면, 아무것도 반복되지 않는 진정한 ‘끝’이다. 끝은 시작의 열매다. 시작 없이 끝이 있을 수 없고, 끝이 없는데 시작이 있을 수는 없다. 기쁨과 행복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고통과 절망도 ..
🅢•STYLE•STORY/LIFE 2019.09.24
@ 궁싯거리며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머리에 느낌표가 찍힌 지 십 분 만에, 옷을 들고 배낭을 메고 나섰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 계획, 준비. 셋 모두 집에 버려뒀다. 백만 년에 한 번쯤은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준비’ 없이는 떠나지 못하는, 강박증을 넘어 중독 같은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고비사막 한복판에서 테플론 테이프를 찾아도 가지고 있을 인간, 그것이 바로 나라는 인간의 정체다. 일어날 수 없는 상황도 생각하며 준비하는 것, 아마 태어날 때부터 어떤 존재가, 본능이라는 DNA에 코드를 심어 놓은 것이 틀림없다. 이건 다빈치 코드 보다 더욱 치밀하고 은밀하다. 아무 생각 없이 준비 없이 계획 없이,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결국 나의 본능을 완벽하게 무..
🅢•STYLE•STORY/PEOPLE 2019.09.21
# 초로(初老)의 사내가 계단 밑 어두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손에는 생막걸리와 소주 한 병씩이 들려 있었다. 낡은 잠바와 구두, 그러나 단정했다. 가진 것이 넉넉하지 않으나, 행색에서 자존심을 느낄 만 했다. 막걸리를 따더니 숨도 쉬지 않고 배 안으로 부어 넣는다. 목이 마른 줄 알았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막걸리 한 병이 금세 사내의 뱃속으로 이동했다. 입으로 소주병을 따더니, 막걸리 뒤를 이어, 벌컥벌컥 마신다. 소주의 쓴맛이 얼굴을 일그러지게 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술이 필요했던 이유는 눈물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한평생 살아온 모든 감정을 담아낸 표정에서 눈물이 흘렀다. 소리 내지는 못하고, 꺽꺽대지도 못하고,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장소의 위치로 볼 때,..
🅖•GOODNESS•GENUINE/PHRASE 2019.09.14
‘끝’은 언제를 말할까요? ‘끝’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수많은 끝을 포괄하는 진정한 ‘끝’은 무엇일까요? 그 ‘언제’는 알 수도 있고 알 수 없을 수도 있어요. 시간 위에서 삶이라는 바퀴를 굴리다 보면, 수없이 많은 ‘끝’을 만나게 되지요. 때로는 그 끝을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어떨 땐 사람이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있지요. 의지로 되는 것과 의지와 무관한 끝이 있어요. 끝이 없는 것도 있을 수 있지요, 이를테면 ‘시간’이 그렇지요. 물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시간’에도 끝이 있지요. 어쨌거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중요한 ‘끝’이 하나 존재하지요. 바로 죽음입니다. 살아 있는, 살아가는, 살아 내는. 이 모든 과정이 종료되는 진정한 끝이 바로, 생명을 잃는 일이 아닐까요? 살..
🅢•STYLE•STORY/STORY 2019.09.13
山・함박눈이 내리는 날, 마지막 기차가 떠나는 시간 즈음, 혼자서 오르는 산을 좋아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함박눈은, 겨울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감사하게 받고, 고맙게 즐기고, 겸손하게 마주해야 한다. 선을 넘으면, 선물이 재앙이 된다. 적어도 겨울의 함박눈은, 계절이 주는 최고의 호사다. 눈이 오면 산을 생각하고, 산속에 들면 눈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눈이 있는 겨울 산과 눈이 없는 겨울 산은, 같은 산이면서 전혀 다른 산이기도 하다. 바람이 있는 가을 산과 바람이 없는 가을 산은, 같은 산이면서 전혀 다른 산이기도 하다. 비가 있는 여름 산과 비가 없는 여름 산은, 같은 산이면서 전혀 다른 산이기도 하다. 산은 그래서 언제나 두 얼굴, 때로는 세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얼굴을 하고..
🅢•STYLE•STORY/BOOK 2019.06.29
# 하늘, 그날의 하늘은 짖은 회색이었다. 가을이었지만 청명하지 않았다. 초겨울의 어느 날처럼 을씨년스러웠다. 회색 하늘이 밀어내는 무게감 속을 걸었다. 좁은 골목을 한참 걷다가 막다른 곳에서 갇혔다. 하늘에 갇히고 길 안에 갇혔다. 막히면 돌아가면 되지만, 갇히면 움직일 수가 없다. 한참을 그곳에 갇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넋 놓고 그곳에 서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바람, 스산한 바람이 달려오다 함께 갇혔다. 겨울도 아닌데 바람은 몹시 차가웠다. 그제야 하늘을 향했던 눈이 땅으로 돌아왔다. 넋 놓고 떠돌던 생각이 머리를 지나 마음으로 돌아왔다. 바람이 막힌 담을 돌아, 왔던 길로 돌아 나갔다. 그제야 갇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칙칙한 담벼락을 등지고 터벅터벅 왔던 길을 거슬러 돌아..
🅘•IMAGINE•INSPIRE/LETTER 2019.06.26
#나의 첫 편지는 하늘에서 시작됐다. 눈동자를 타고 들어와 마음을 온통 파랗게 물들이던 파랑. 검푸른 여름 바다의 파랑이 아니고, 시퍼런 겨울 호수의 파랑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파랑을 모으고 꼭꼭 눌러, 그리움만을 짜내서 만든 것 같은, 코발트블루의 하늘에서 시작됐다. 그런 하늘이 찾아오는 날이면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면 그런 하늘을 생각했다. 너에게 그렇게 첫 편지를 띄웠다. 언제나 만년필에 파란 잉크를 채웠다. 언제나 종이 대신 노트를 준비했다. 노트에 쓰인 편지는, 편지가 아니라 단편이 됐다. 단편의 수필, 단편의 소설, 단편의 시집. 편지를 쓰는 시간은 완벽하게 너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산속, 세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세상에서 가장 넓은 호수. 너에게 편지를..
🅗•HEART•HEALING/PHOTO with POETRY 2019.06.25
수인선 철도가 있었다. 수원에서 인천, 정확하게는 수원과 송도를 오갔다. 폭이 좁은 협궤열차였다. 1937년 3월 1일 기차가 처음 달렸다. 1995년 12월 31일 기차는 달리는 것을 멈췄다. 철로의 폭이 좁으니, 기차의 폭도 좁았다. 양쪽 자리에 앉아 팔을 뻗으면, 앞에 앉은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감성의 편에서 보면 낭만이 있었고, 감정의 편에서 보면 불편했다. 그 기차가 지나는 곳에 소래포구가 있다. 기차가 달리는 것을 멈췄어도, 한동안 철로는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군데군데 살아남아서 검붉은 녹을 입으며 나이를 먹어 갔다. 2003년 그렇게 세월을 몸으로 견디고 있는, 협궤열차의 한 자락을 찾아 소래포구를 찾았었다. 철로가 지나던 다리를 기차 대신 사람이 건너다녔다. 협궤가 놓인 다리는 ..
🅖•GOODNESS•GENUINE/PHRASE 2019.06.24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생각이 어떤 결실을 보려면 행동이 필요합니다.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생각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옮긴다고 원하는 결과를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되기도 하지요. 어떨 때는 오히려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말합니다. “참, 뜻대로 안된다. 하는 일마다 안된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그 말을 입에 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뜻’이란 무엇일까요? 이루고자 하는 목표일 것입니다. 도달하고 싶은 경지일 것입니다. 간절하게 품은 소망일 것입니다. 그런데 ‘뜻’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방향을 잘 못 잡았거나, 도리에 어긋나거나, 선한 것이 아니거나. 뜻이라고 말하..
🅘•IMAGINE•INSPIRE/ESSAY 2019.06.22
7년이라는 세월은 머리로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길다. 만약 짧다고 기억하고 있다면, 그 시간이 최소한 살만 했다는 뜻이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간의 길이가, 다르게 체화되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빛의 속도로 여행을 했던가, 시간의 흐름을 세포의 영역에서 경험했을 때다. 빛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세포는 생명의 줄기인 만큼 누구나 겪을 수 있다. 물리적인 고통, 통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설명하기가 힘들다. 수많은 너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나의 문제인 까닭이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생활해야 하는 가족의 힘겨움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지켜보는 것과 겪어야 하는 것은 다르다. 세포가 몇 개인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뼈마디가 몇 개인지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눈물샘이..
🅗•HEART•HEALING/PHOTO with LIFE 2019.06.21
양심(良心)이 국어사전 속에 갇혔다. 어떤 양심은 남극에 유배됐다. 다른 양심은 달의 뒷면에 버려졌다. 감옥을 가보지 않고도 감옥 속에 산다. 남극에 서보지 않고도 극한의 하얀 황무지에 산다. 달에 버려진 양심은 아예 존재 자체가 잊혔다. 우주 보다 넓을지도 모르는 양심을 그렇게 영어(囹圄)에 던져 놓고 열심히 죽기 위해 산다. 보이는 법도 무법이 되는 세상. 보이지 않는 양심이 힘을 쓸 재간이 없다. 본래부터 그랬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겨날 때부터, 양심은 거기 있는데 여기는 없다. 거기는 마음이고, 여기는 세상이다. 마음과 세상의 경계가 없어졌다. 경계가 없으니, 막을 수가 없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를 않는다. 고개를 숙여야 할 때, 눈을 부릅뜬다. 한 걸음 물러나야 할 때, 발길질하며 앞으로 나..
🅗•HEART•HEALING/POHTO with MEMORY 2019.06.20
1995년 3월, 그 곳에 있었다. 개발되기 이전의 한강처럼 황량했고, 잿빛 물살은 이국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물을 거스르는 배는 거의 없었다. 가끔 화물을 실은 배가 물살을 갈랐다. 강변은 적막했지만, 인적은 있었다. 걷는 사람 보다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았다. 동행 없이 혼자 강가에 있는 ‘그’를 그곳에서 만났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가는 시간의 길목이었다. 강물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던, 50대 남자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셔터를 눌러야 하나, 그냥 지나쳐야 하나. 망원 렌즈로 본 그의 뒷모습은, 강물보다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듯했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로 했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물을 따라 걸었다. ..
🅘•IMAGINE•INSPIRE/ESSAY 2019.06.18
#1 뜬금없이 누군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렇게 그리움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대책이 없다. 몇 날 며칠을 머리에서 맴돌고 마음 한구석에서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그립다 한들 모두가 같은 그리움일까. 그리움에도 종류가 있고, 강약이 있고, 색깔이 있다. 그것은 이유 없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 조용히 자취를 감출 뿐이다. 거의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워 있어야 했다.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했던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지치니 몸이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나 보다. 몇 년째 고생하게 만들고 있는 지병(持病)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좀 쉬어야겠다고 난리 치는 몸의 구석구석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다. 덩그러니 방 안에 혼자 누워 있으면 틈을 주지 않고 찾아 든다. 아픔이 커지면 커지는 대로, 잠시 잦아들면 그..
🅘•IMAGINE•INSPIRE/ESSAY 2019.06.15
눈으로 노래하는 아이. 나는 작은 아이를 그렇게 부른다. 그 아이의 두 눈은 경이롭다. 크고 투명한 두 눈으로 보는 세상이 아름답다. 적당히 세상에 타협하고, 가장이라는 자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묵인하고 사는 것에 대해 녀석의 눈은 냉정하기까지 하다. 아이의 눈은 늘 노래한다. 무엇이든 눈으로 들어온 빛을 그대로 묻어 버리는 법이 없다. 나는 가만히 녀석의 노래를 듣고 있을 뿐이다.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는 큰아이와 달리 작은 아이는 눈으로 본 것을 늘 입으로 노래처럼 읊조린다. 세상에 나올 때 몹시도 컸던 울음소리만큼이나 크게 외치며 노래한다. 분만실에서 나올 때 녀석은 쭈글쭈글한 얼굴에 꼭 감은 눈으로 아빠의 목소리만 들어야 했다. 녀석의 작은 손바닥에 검지를 넣고 세상에서 가장 뜻깊은 악수를 했다...
🅘•IMAGINE•INSPIRE/ESSAY 2019.06.15
눈으로 시를 쓰는 아이. 나는 큰아이를 그렇게 부른다. 그 아이의 두 눈은 특별하다. 깊고 맑고 큰 두 눈을 보면 마음이 늘 일렁인다. 아빠로서 부족함이 없는지. 아빠로서 바람막이가 잘 되고 있는지. 아빠로서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높이에 자리 잡게 해주고 있는지. 아이의 눈은 늘 말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대해 쉴 새 없이 말하고 있다. 난 다만 조용히 눈이 말하는 것을 들을 뿐이다. 그 아이의 눈을 볼 때면 어느 때 보다 긴장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그 눈 맞춤 때문이다. 분만실에서 나올 때.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아빠를 올려보며, 동그랗게 빛나던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려고 한다. 갓난아기는 얼굴도 쪼글쪼글, 눈도 못 뜬다고 알았었다...
🅖•GOODNESS•GENUINE/PHRASE 2019.06.15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지요.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죠. 어디 물건뿐인가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마음이 원하는 욕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나, 눈으로 보는 순간, 마음에 점을 찍습니다. 점이 자라면 선이 되고, 선이 커지면 면이 되고, 면이 확장되면 공간이 되지요. 그렇게 마음 한 쪽에 ‘갖고 싶은’이라는 방이 생기면, 점점 더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무엇을 보는지, 어떤 것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근본입니다. 본다는 것은, 그곳에 있거나, 어떤 매체를 접하고 있을 때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지 말아야 할 곳, 보지 말아야 할 것, 그런 것들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합니..
🅖•GOODNESS•GENUINE/PHRASE 2019.06.14
낮에 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밤에 해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지요. 그러나 아무도 하늘 위에 해가 지나는 것을, 하늘 위에 별들이 모여 있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지요. 물론 낮에 해를 보았기 때문에, 밤에 별을 보았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시간에도 그것들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해나 별을 본 적이 없다면 어떨까요?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 해주는 이야기만 듣고, 책 속에 쓰여 있는 글만 보고,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확률이라는 잣대를 종종 이야기하죠. 그런데 그 확률이라는 것이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이쪽 편에서 판단하는 것이죠. 만약 그 사건이 일어난 뒤에 본다면 확률은 의미..
🅖•GOODNESS•GENUINE/PHRASE 2019.06.13
간절함이라는 배가 시간이라는 강물을 따라 흘러갑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배는 그저 흘러갈 수밖에 없지요. 빠른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얇은 여울에서는 돌덩이에 부딪히고, 때로는 이름 없는 작은 섬에 걸리기도 하지요. 간절함이 그렇게 시간의 강을 따라 표류하면 결국 애절함이라는 바다에 닿게 되지요. 바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애절함은 실상은 거대한 실타래입니다. 남겨진 마음과 떠나는 마음을 엮어주는 실. 심장이 그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세월이라는 물살 속에 있어도 늙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이 현실이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바람대로 되지는 않지요. 간절함은 절박함의 다른 말인 것 같지만, 사실 뿌리가 다르고 방향이 같지 않지요. 그러나 결국 애절함에 언젠가는 다다르고, 그렇게 끝을 ..
🅖•GOODNESS•GENUINE/PHRASE 2019.06.13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다면, 그건 신앙이 아니라 논리지요. 논리는 인간의 영역이고, 신앙은 논리 너머에 있지요. 신앙은 믿음에서 시작해 진리를 보고, 논리는 증거를 모아 믿음에 도달하려 하지요. 생각하기 싫다고 피하고, 어렵다고 피하고, 귀찮다고 피하면. 결국 후회만 남을 텐데, '후회'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까요? 당신의 마음속에 ‘후회’라며 떠오르는 지금 그 느낌은 어쩌면 '후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는 그 누구도 '후회'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은 없지요. '후회'는 저세상에서 이 세상을 돌아볼 때 발현되는 상태니까요. 안타깝게도 당신의 '생로병사'는 이성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네요. 더 안타깝게도 살아서 꼭 후회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네요. 모든 것은..
🅘•IMAGINE•INSPIRE/ESSAY 2014.08.02
몸에 옷이라는 것을 걸치고, 발에 신발이라는 것을 신는다. 태고부터 엉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직 인간만이 옷과 신발을 갖게 됐다. 그뿐인가. 머리에는 모자라는 것을 얹고, 손에는 장갑을 낀다. 자연으로부터 몸둥이를 보호하려고 한다지만 어쩌면 몸둥이를 자연과 격리시키고 싶은 불안때문인지 모른다. 원죄때문이다. 신발에 흙 묻힐 없이 사는 도회지 사람들에게 그것은 생존 경쟁의 상징이다. 이리저리 밀리는 버스 안에서, 숨막히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신발을 진지하게 바라 본 적이 있는가? 시장을 누비는 지게꾼, 좌판에서 나물을 파는 노파, 어깨에 가족을 메고 사는 아버지, 언제나 자식이 먼저인 어머니, 잰걸음으로 세상을 누비는 아이들. 나의 신발이 있다는 것은, 나는 살아있다와 동의어. 제 각각 다른 가..
🅗•HEART•HEALING/PHOTO with POETRY 2014.08.01
이런 사람을 그런 곳에서 만날 때가 있다. 저런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만날 때도 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과 동의어일지 모른다. 살아 있으니까 만나는 것이고, 만났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만남이라는 것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인생이라는 것이 생각되로 되지 않는 길을 가는 것 아니던가. '저런 사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 '이런 인간 정말 있네' 하고 깨닫게 하는 질나쁜 인간. 저런 사람, 이런 인간, 그 속에 나. 그렇게 섞이고 얽히고 엮이는 것이, 인생, 사람이 산다는 것 아니겠나. 다만, 안타까운 것은 언제나 내가 가는 그 길 위에는 '저런 사람' 보다는 '이런 인간'들을 마주치게 된다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인연의 양과 질은 공평한..
🅘•IMAGINE•INSPIRE/ESSAY 2014.07.25
라디오가 있는 풍경 (1)라디오가 있는 풍경 하나, 지구. 아침의 라디오는 텃밭에서 갓 따서 담아온 싱싱한 야채 바구니와 같다. 경쾌한 음악과 밤 새 일어난 온갖 새로운 소식이 넘친다. 새벽 이슬을 온몸 가득 머금고 아침상에 오르는 싱싱한 채소처럼 늘 신선하다. 상큼하거나 힘 있는 목소리가 언제나 햇살처럼 흘러나오는 아침의 라디오는 그래서 늘 새롭다. 일하러 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차 안에서 맞이해 주는 라디오는 원두 커피 한 잔과 같다. 잠을 깨우고, 몸을 펴게 하는 그 소리로 사람들은 하루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너무 진한 커피가 속을 쓰리게 하듯, 듣고 싶지 않는 녀석의 외침을 강재로 들어야 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점심의 라디오는 삶은 계란의 노른자와 같다.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
🅗•HEART•HEALING/PHOTO with LIFE 2014.07.24
이런 분, 저런 놈, 그런 년. 수적으로는 밤하늘의 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적다. 그런데 행동 또는 작태를 보노라면 그야말로 '별의별'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인간 세상이고, 세상에 사는 인간들이 그렇다. 좋은 분 같았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다. 나쁜 놈 같았는데, 겪어보니 그런 천사가 따로 없다. 어수룩해 보여 은근히 무시했는데, 나중에 보니 올려다보지도 못할 나무더라. 말도 말고, 탈도 많고, 사연도 많고, 웃음도 많고, 눈물도 넘쳐난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고, 세상을 산다는 것이 그렇다. 그렇게 모여 있어서 '사람 사는 세상'이 된다. 함께 사는 세상은 불편하고 번거롭고 서글프고 위험할 때가 많다. 늘 벗어나고 싶고 늘 도망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마음 돌리고 신발까..
🅗•HEART•HEALING/PHOTO with POETRY 2014.07.22
15년은 넘었고 20년은 채 되지 않았다. 천상병 시인의 찻집 귀천을 들렀다가, 인사동 골목에서 만났던 찻집 '아빠 어릴적에'. 그 후로 인사동을 지나칠 때 마다, 이사간 옛집을 찾아가듯 한번 씩 들러 눈 인사를 나누던 곳. 처음 봤을 때는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했고, 어느날 부터는 아들의 아빠가된 나를 돌아 보았었다. 정리하던 사진 속에서 만난 필름, 잊고 살던 친구처럼 반갑다. 아련한 시간 냄새가 머릿속 저 깊은데서 밀려온다. 난 여전히 필름이 좋다. 필름의 그 불편한 기다림이 주는 설렘, 필름마다 조금씩 다른 미묘한 색감이 만들어 내는 흥분. 가마에 불을 지피고 도자기를 기다리는 장인의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셔터를 누를 때 마다 잘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 찍고, 보고, 마음에 안 ..
























햇살이 기세 등등할 때가 제격이다. 푹푹 찌는 찜통 공기까지 더해지면 녀석들에게 더욱 좋다. 거기에 상큼한 바람까지 넉넉하게 불어주면 금상첨화, 그것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온갖 더러움을 말끔하게 걷어냈다. 이제 구름 몇 점 떠 있는 파아란 하늘을 보며, 줄 하나에 몸을 걸고 햇살 따라 바람 따라 일광욕을 즐기면 된다. 그 순간 만큼은 귀천이 없다. 그저 맑은 물로 함께 몸을 씻어낸 처지인 만큼, 허물없는 친구이자 부끄러울 것 없는 동무다. 빨래질 당한 녀석들은 누군가의 삶의 한 자락에서, 오늘의 한 조각을 만들어낸 오브제가 된다. 그렇게 팔짜 좋게 늘어지게 햇살이나 바람을 느끼면 된다. 녀석들의 주인은 빨래라는 노동을 통해 힐링의 순간을 만끽한다. 하긴 세탁기가 빨래해 주는 세상에, 빨래는 더 이상 ..
🅗•HEART•HEALING/PHOTO with POETRY 2014.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