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格] 말은 말이어야 하고, 글은 글이어야 한다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이다. 말이 글이 될 수 없고, 글이 말이 될 수 없다. 말을 글처럼 사용하면, 감정이 곡해된다. 글을 말처럼 사용하면, 진심이 왜곡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를 넘으면 그렇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을 건너면 그렇다. 말은 바람 같다.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바람은 그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한다. 요통 치는 바람은 그 얼굴에 공포를 각인한다. 사방에서 오는 바람은, 사방으로 갈 수 있다. 어느 곳에서나 오는 바람은,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머물 수는 없는 것이 바람이다. 그것이 이치고, 그것이 순리다. 움직이지 않으면 더는 바람이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바람도 사라진다. 사라진 바람은 잊히지만 갇혀버린 바람은 흉기가 되기 쉽다...
202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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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것
이른 여름의 시작은 가장 몸이 즐거운 시간이다. 그 무렵 커다란 산 앞에 서는 것, 그 시간 깊은 계곡에 드는 것, 그즈음 숲길을 따라 걷는 것을 사랑한다. 나뭇잎의 변화는 멈추지 않는 바람이고, 시간을 타고 바람처럼 움직인다. 푸른 숲의 상쾌함은 그치지 않는 강물이고, 햇빛과 함께 강물처럼 흘러간다. 색은 생명이 없지만, 잎은 생명이 있다. 초록이 녹색이 색으로 존재하면 명사지만, 초록이 녹색이 잎 속에 살아가면 동사가 된다. 반짝이는 초록, 흔들리는 녹색, 시원한 그린, 상큼한 청록이 되어, 하늘로 땅으로 모든 곳으로 날아가고 흘러간다. 햇빛과 함께하면 반짝이고, 달빛 아래서는 흔들린다. 그 반짝임과 그 흔들림 앞에서 서면, 심장이 잠시 생각을 멈춘다. 머리로부터 오는 모든 신호를 차단하고, 머리가 ..
2019.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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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과 욕심의 근원이 되는 눈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지요.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죠. 어디 물건뿐인가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마음이 원하는 욕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나, 눈으로 보는 순간, 마음에 점을 찍습니다. 점이 자라면 선이 되고, 선이 커지면 면이 되고, 면이 확장되면 공간이 되지요. 그렇게 마음 한 쪽에 ‘갖고 싶은’이라는 방이 생기면, 점점 더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무엇을 보는지, 어떤 것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근본입니다. 본다는 것은, 그곳에 있거나, 어떤 매체를 접하고 있을 때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지 말아야 할 곳, 보지 말아야 할 것, 그런 것들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합니..
2019.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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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신발의 의미, 아직 이편에서 걷는다는 것
몸에 옷이라는 것을 걸치고, 발에 신발이라는 것을 신는다. 태고부터 엉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직 인간만이 옷과 신발을 갖게 됐다. 그뿐인가. 머리에는 모자라는 것을 얹고, 손에는 장갑을 낀다. 자연으로부터 몸둥이를 보호하려고 한다지만 어쩌면 몸둥이를 자연과 격리시키고 싶은 불안때문인지 모른다. 원죄때문이다. 신발에 흙 묻힐 없이 사는 도회지 사람들에게 그것은 생존 경쟁의 상징이다. 이리저리 밀리는 버스 안에서, 숨막히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신발을 진지하게 바라 본 적이 있는가? 시장을 누비는 지게꾼, 좌판에서 나물을 파는 노파, 어깨에 가족을 메고 사는 아버지, 언제나 자식이 먼저인 어머니, 잰걸음으로 세상을 누비는 아이들. 나의 신발이 있다는 것은, 나는 살아있다와 동의어. 제 각각 다른 가..
201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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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 산다는 것은, 날갯짓을 멈출 수 없다는 것
이런 분, 저런 놈, 그런 년. 수적으로는 밤하늘의 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적다. 그런데 행동 또는 작태를 보노라면 그야말로 '별의별'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인간 세상이고, 세상에 사는 인간들이 그렇다. 좋은 분 같았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다. 나쁜 놈 같았는데, 겪어보니 그런 천사가 따로 없다. 어수룩해 보여 은근히 무시했는데, 나중에 보니 올려다보지도 못할 나무더라. 말도 말고, 탈도 많고, 사연도 많고, 웃음도 많고, 눈물도 넘쳐난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고, 세상을 산다는 것이 그렇다. 그렇게 모여 있어서 '사람 사는 세상'이 된다. 함께 사는 세상은 불편하고 번거롭고 서글프고 위험할 때가 많다. 늘 벗어나고 싶고 늘 도망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마음 돌리고 신발까..
201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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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 우리의 시간 속에서, On & Off
살아가다 보면, 살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있을 때가 있다. 하늘 한번 못 보고 몇 달을 그렇게 숨쉬고 있을 때가 있다. 어제 그랬던 것 처럼 밥을 먹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잠을 자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옷을 입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신발 신고 집을 나선다. 앞에서 잡아 당기고, 뒤에서 밀어부치며, 숨 고르기 한번 못하게 하는 그런 시간이 있다. 살아지다 보면,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 말할 때 마다 가슴이 미어질 때가 있다. 말하는 그이나 말 못하고 버티는 이몸이나, 힘겨운 세상살이 입타령이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견디겠는가. 잔인하지만 이몸 보다 못한 이를 보며 때로는 위안을 삼고, 비굴하지만 너무도 부러운 저쪽편 사람들을 보면서 시간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살려하다 보면..
2014.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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